Life/Essay

안전거리

Minkyung Lee 2019. 7. 15. 01:17

독서모임 중에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나는 이 질문에 '안전거리'라고 답했다. 안전거리. 안전을 위한 거리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안전한 거리이다.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관계가 가장 어렵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재밌어 해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훅 들어가거나, 해석에 따라 선을 넘는 발언들을 할 때가 있다. 명백히 내가 잘못한 상황을 인지하는 동시에, 타인의 질책이 더해지면, 나는 그 순간 자아비판을 시작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역시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풀이 죽어버린 나는 그 뒤로 한동안은 어느 집단에서나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을 택한다.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집단의 외곽으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밀려남의 끝에는 절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초조해지거나 체념하게 된다. 철없는 생각이 든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해줬으면.' 이 생각은 너무 수동적이라는 생각에 미쳐, 능동적으로 나도 말을 던져본다. 하지만 뭔가 엇나가는 느낌이다. 미끄덩미끄덩한 말의 감촉이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 허공에서 사라진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전해주면서 관계 안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든 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내 진심을 열어보였던 집단에서는 부담스러움을 받았고, 그 아픔 때문에 마음을 잠시 닫았던 집단에서는 미끄러졌다.

안전거리를 좀 줄여야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 적당한 수치를 알지 못한다. 
일단 안전해야 하기에 나는 그 수치를 넉넉하게 잡고,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아직까지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본질은 '안전거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