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철학/컨셉과 IT 트렌드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도전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한국에 매장을 연다고 발표했을 때, 커피애호가와 블루보틀 팬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졌다. 올해 2분기 내로 서울시 성수동에 1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커피 브랜드라고 하면 대개 스타벅스를 떠올린다. 한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니까. '세이렌 오더' 등 IT 기술을 응용해 빠른 시간에 커피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블루보틀은 스타벅스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스타벅스 vs. 블루보틀 커피

블루보틀은 주문 즉시 정성껏 커피를 내린다. 주문받은 커피를 한 잔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0분 남짓. 1분 1초를 쪼개서 쓰는 현대인, 특히 성미가 급하기로 유명한 한국인과는 매칭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스타벅스가 거리 곳곳에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장하는데 비해 블루보틀은 매장을 매우 천천히 확장한다. 미국과 일본에만 매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개수는 다 합쳐서 50개 정도(2017년 기준)라고 한다. 메뉴의 개수와 종류에서도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은 차이를 보인다. 스타벅스는 매 시즌과 특별 시즌에 새로운 메뉴를 런칭하고, 커피 외에도 차와 와인까지 메뉴를 확대한다. 이에 반해 블루보틀은 오로지 커피만 고집한다. 커피가 아닌 메뉴는 핫초코 하나뿐이다. 아마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고객을 위한 메뉴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메뉴의 종류도 여덟 가지로 한정한다. 커피에 집중한 여덟 가지 메뉴에서 블루보틀의 자신감과 고집 그리고 자부심이 느껴진다.

스타벅스 vs. 블루보틀



타협없는 브랜드 철학 : '최고 품질의 커피'

블루보틀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의 철학에서 시작했다.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그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해고당한 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과 사람들에게 최고의 커피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욕망이 맞물려 프리먼은 이동식 수레에 자신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와 핸드드립 도구를 싣고 주말 장터에 나가 사람들에게 커피를 판매한다. 정성을 다해 10분동안 한 잔의 커피를 내렸고, 커피뿐만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줬다고 한다.(커피판 알쓸신잡) 입소문이 퍼지고 프리먼은 마침내 매장을 오픈하고 규모를 넓혀가지만, ‘최고 품질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철학은 굳건히 유지되어 블루보틀의 철학이 되었다.

블루보틀은 프리먼의 철학에 의거해, '최고 품질의 커피'에 중점을 둔다. 로스팅 된 지 48시간 된 원두만 사용하고, 오로지 싱글 오리진(원산지가 단일한) 원두를 사용해 원두의 특성을 살린다. 한 잔의 주문이 들어오면 최고의 바리스타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커피를 내린다. 요식업은 회전율이 생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단위 시간 내에 다수의 손님들에게 다량의 상품/서비스를 빠르게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자신의 철학을 위해 요식업의 기본 틀을 탈피했다.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매장에서의 매출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기는데, 과연 블루보틀은 매출을 어디서 올리는 것일까?

블루보틀 매장은 곧 브랜드 쇼룸의 역할을 수행한다


오프라인 매장의 브랜드 쇼룸화 + IT 트렌드와의 접목 =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대책 없는 탈선은 아니었다. 블루보틀은 IT에 기반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 일단, 블루보틀은 매장을 브랜드 인지도와 호감도를 상승시키는 쇼룸처럼 활용한다. 매장에서 최고급 커피를 제공한다는 블루보틀의 철학과 컨셉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기 위함이다. 매장을 ‘블루보틀’이라는 브랜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시장처럼 활용한 것이다. 마침 이 즈음에 인스타그램을 필두로 selfie문화가 발달한다. 블루보틀 매장에서의 selfie는 자연스럽게 블루보틀 브랜드에 대한 광고가 되어준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블루보틀은 이윽고 매장을 selfie에 최적화된 배경으로 꾸민다. 블루보틀을 상징하는 커피색과 흰색 그리고 터키 블루색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최적의 selfie를 촬영할 수 있는 경험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블루보틀은 자사 브랜드의 인지도를 상승시킨다. 매장 내에 비치된 굿즈 등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더 강화한다. 내가 마시는 커피 원두가 어디에서 왔는지, 블루보틀은 어떻게 원두를 선별하고 로스팅하는지 모든 프로세스를 공개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배치한다. 브랜드 스토리와 쇼룸의 다양한 배치를 통해 사람들은 블루보틀이라는 브랜드를 신뢰하게 된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블루보틀은 새로운 수입원을 만든다.

바로 B2B 영업이다. 블루보틀이 선별한, 블루보틀이 엄격히 로스팅한 원두를 레스토랑이나 다른 카페에 납품하는 것으로 매장에서의 매출 감소를 커버하는 것이다. 또한 이 때 마침 구글의 투자를 받아 블루보틀은 웹 페이지를 오픈한다. 프리먼을 필두로 한 블루보틀 실무진의 의견을 모아 웹 페이지를 세 개 정도 만들어서 이를 소비자들에게 테스트해보고 가장 반응이 좋았던 사이트를 오픈했다. 오프라인에서의 블루보틀이 온라인으로 옮겨가 매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빛을 발한 것은 앞서 설명한 ‘신뢰도’였다. 매장에서 구축한 신뢰도가 Business 구매자에게도 퍼져서, 블루보틀의 원두가 가진 신뢰도에 기반해 납품 계약을 맺는다. 브랜드 신뢰도에 기반한 원두 상품은 순조롭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먼은 B2B 비즈니스 모델을 폐기하기로 결정한다. 점점 납품업체가 많아지다보니, 블루보틀 본사에서 원두의 질을 관리할 수 없고, 균일한 고품질의 원두를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블루보틀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카페에서 블루보틀 원두를 사용하지만, 그 커피의 맛이 별로라면 타격을 입는 것은 블루보틀 브랜드일 것이다. 그래서 프리먼은 B2B 대신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B2C 모델로 전환한다. 요즘 각광을 받는 subscription model이다. 프리먼이 브랜드 철학을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블루보틀 브랜드의 향방은?

블루보틀을 인수한 네슬레(Nestle)



최근 블루보틀은 네슬레에 7000억원의 가치를 인정 받고 인수되었다. '블루보틀의 장인 정신이 훼손되었다', '악마에 영혼을 팔아버린 블루보틀' 등 수많은 비판적인 의견이 난무했다. 장인정신이 사라지고 대기업 특유의 대량 생산 특질에 브랜드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앞으로 블루보틀의 행보가 어떨지 지켜보는 것도 브랜드를 공부하는데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결국 블루보틀은 굳은 철학과 이를 구현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었기에 오늘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정리한다. 브랜드는 장기적 투자이고, 그 결과가 나타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성미가 급한 오너들은 성공한 타 브랜드의 외관만 보고, 자신의 브랜드도 그렇게 단기간에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브랜딩 에이전시나 광고 에이전시를 달달 볶는다. 하지만, 블루보틀도 오랜 기간동안 투자와 실험을 통해 오늘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브랜드 철학에 대한 오너의 고집, 그 고집을 구현하는 시스템, 그리고 적시에 전환한 디지털 자산이 결합해 오늘날의 블루보틀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엄청난 투자로 되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의 숙성이 필요한 것이 브랜드라는 것을 느꼈다. 요식업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관리하는 현업에 있거나, 자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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