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보통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주를 보는 순간은 흥미롭지만, 사주 결과에 내가 너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보면 사주를 믿는 자가 하는 행동의 한 갈래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는 '머리와 마음의 괴리'라고 표현한다. 머리로는 안 믿어, 안 믿어, 안 믿어라고 외치지만, 마음은 그래도 혹시나, 그래도 혹시나, 그래도 혹시나 라면서 상호배반의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화 역시 나의 감정의 낭비를 발생시키므로 나는 사주팔자풀이 근처에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퍽 잘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년월일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의 동의 없이 - 사실 사주를 보는데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 나에 관한 사주를 보았다면 나는 이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작년 이맘때쯤, 어머니께서 외사촌누나의 결혼식을 다녀오셨다. 간만에 만난 이모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셨으리라 짐작된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이 불효자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이 있는 법. 이모께서는 부산의 용한 점쟁이의 존재를 어필하시면서, 그에게 이 불효자의 미래를 살짝 엿보자는 달콤한 제안을 건네셨겠지. 그리고 그 사주풀이는 꽤나 솔깃한 것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행정고시 보는 게 어떻겠냐"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의 뜬금없었던 질문 하나를 통해, 나는 이번 사주풀이가 어머님의 마음에 매우 흡족했던 말이라 짐작했다. 나는 왜 그러시느냐 물었고, "너 사주 팔자에 관운이 있대. 고시나 시험을 보면 잘 풀린다는 거야"라고 어머님은 답하셨다. 당시 나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의 말씀을 드렸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밌고 잘 맞아요. 하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여름...

나는 요즘 문득, 내가 어쩌면 사주에 반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고시, 시험, 안정성이 내 사주를 대표하는 키워드(?)인데, 마케팅, 변수, 트렌드 등의 키워드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삶을 지향해서 이 사단(?)이 난 것이 아닐까? 이쯤이면 할만큼 한 것 같고, 업무에 대한 관심도 있고, 일을 열심히 할 태도도 갖췄고, 능력도 모자라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매번 고배를 마시니 이쯤되면 이것은 알 수 없는 모종의 절대적인 힘이 나를 고난으로 쳐박아버렸다는 해석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계속 그 업계로 자기소개서를 들이민다고? 실컷 해보셩~"이라며 큭큭대는 '모종의 절대적인 힘'을 상상하니 약이 오른다. 사주팔자대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기질대로 살아간다는 뜻일텐데, 나는 내 기질에 반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결국 기질이 제대로 발현이 안 되니, 남은 건 스트레스뿐. 기질에 반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나의 몫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몫이다. 기질에 반하는 나의 선택이 나와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한 번 더 나를 괴롭게 한다.

그렇다고,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공직에는 원래 뜻이 없었다. 지금 내 인생에서 고시에 도전할 타이밍은 이미 놓친 것 같다. 만약, 사주에 반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의 프로세스가 계속 되는 것이라면, 그런데 이미 그 흐름을 틀어버릴 타이밍을 놓쳤다면, 나의 남은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면 뭐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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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중에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나는 이 질문에 '안전거리'라고 답했다. 안전거리. 안전을 위한 거리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안전한 거리이다.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관계가 가장 어렵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재밌어 해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훅 들어가거나, 해석에 따라 선을 넘는 발언들을 할 때가 있다. 명백히 내가 잘못한 상황을 인지하는 동시에, 타인의 질책이 더해지면, 나는 그 순간 자아비판을 시작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역시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풀이 죽어버린 나는 그 뒤로 한동안은 어느 집단에서나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을 택한다.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집단의 외곽으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밀려남의 끝에는 절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초조해지거나 체념하게 된다. 철없는 생각이 든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해줬으면.' 이 생각은 너무 수동적이라는 생각에 미쳐, 능동적으로 나도 말을 던져본다. 하지만 뭔가 엇나가는 느낌이다. 미끄덩미끄덩한 말의 감촉이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 허공에서 사라진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전해주면서 관계 안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든 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내 진심을 열어보였던 집단에서는 부담스러움을 받았고, 그 아픔 때문에 마음을 잠시 닫았던 집단에서는 미끄러졌다.

안전거리를 좀 줄여야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 적당한 수치를 알지 못한다. 
일단 안전해야 하기에 나는 그 수치를 넉넉하게 잡고,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아직까지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본질은 '안전거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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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세이 스탠드] 2주 차 과제입니다.

 여름 냄새나는 5월이다. 지하철 1호선의 에어컨 바람에서는 곰팡내가 나고, 몸과 옷 사이에 습기가 차기 시작한다. 여름이 오고 있다. 어제는 봄의 마지막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비 비린내는 묵직했고, 비를 맞은 나뭇잎은 더 짙은 녹색이 된 것 같다. 여름을 판별하는 나만의 리트머스지 - 에어컨 속 곰팡내, 옷 속 습기, 봄비의 비린내 - 가 계절에 응답하면, 냉면집으로 향한다.

 냉면은 종류가 다양하다. 함흥냉면, 평양냉면, 해주냉면. 냉면의 원조가 어디냐를 두고 논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 정도로 냉면에 조예가 깊지 않다. 특정 지역의 냉면을 초월해서냉면이라는 음식 자체를 좋아한다. 냉면은 그 온도만큼 저릿한 느낌으로 영혼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푸드이다.

1.
 여름을 좋아하지만, 여름을 심하게 탄다. 초등학교 때 한약을 지으려고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가 진맥을 해보더니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열치열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차가운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린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더위에 지쳐 헥헥거리는 나와 동생에게

냉면 사주랴?”

라고 말씀하셨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에게 긍정의 표시를 내비쳤다. 할머니는 [원조칡냉면] 전단지를 꺼내신 후, 전화를 걸어 냉면을 주문하셨다. 30분 후 오토바이 헬멧을 쓴 아저씨가 도착했다. 아저씨는 현관에 쪼그려 앉으셔서, 냉면 사리가 담긴 스티로폼 그릇과 육수가 든 플라스틱 물통을 꺼냈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가 면에 부어지면 우리는 재빨리 식탁으로 냉면을 운반했다. 할머니의 감사 기도가 끝나면 허겁지겁 냉면을 먹어 치웠다. 그 순간만큼은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열치열보다는 이냉치열이 더 맞는 스타일이었다.

 여름마다 할머니께서 사주신 냉면은 습관이 되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냉면집으로 향한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먹는다. 소화기가 약하지만, 아직 냉면을 먹고 체하거나 아픈 적은 없으니, 이 정도면 운명이 아닐까?

 

2.
 할머니의 훈육(?)덕분에 여름만 되면 냉면을 찾던 나는 2017년 겨울부터 계절을 가리지 않고 냉면을 먹었다. 2017 11월은 인생 최악의 한 달이었다. 입사 서류를 낸 모든 회사에서 탈락했고, 로스쿨 입학도 실패했다. 진로 상 암초에 부딪히니 부모님과 자주 다퉜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여자친구와의 이별이었다. 이쯤 되니 인간의 기본 욕구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는데 5kg이 빠졌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친구 H가 전화를 걸었다.

괜찮냐?”
“…….”
됐고, 냉면이나 먹으러 가자.”

 <필동면옥> - H의 말로는 유명하다는데 나는 처음 들어 본 - 이었다. 허름한 건물에 들어가니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한 맛집이라는 패가 걸려 있다. 우리는 물냉면과 수육을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냉면 육수를 들이켠 후, 한 젓가락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아 . . . 

 당시 나는 겉보기에는 평온했다. 하지만 속을 열어보면 안에 천불이 났던 것이 분명했다. 취업, 인간관계, 가족 문제가 내면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냉면을 먹은 순간 그 불이 꺼진 느낌이었다. 위에 언급한 감탄사(아 . . . )는 속을 태우던 불이 꺼지면서 난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종교도 주지 못한 평화를 냉면에서 찾다니. 수육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면만 먹었다. 육수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기 위함이었다. 훗날, 친구는 그때의 내가 눈물짓고 있었다고 전했다.

 요즘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냉면을 먹는다. 폭염일 때는 물론,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세상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냉면을 먹는다. 육수의 깊은 맛, 면의 재료, 탄력 등은 잘 모르겠다. 다만, 지치고 깨지고 까맣게 타버린 속을 위로해 줄 음식은 냉면밖에 없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냉면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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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세이 스탠드] 수업 1주차 과제입니다.

 한 달 만에 집에 내려갔다. 집은 조용했고, 안방에서는 어머니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친구분과 통화를 하시는 것 같았다. 조용히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갔다. 분명 저녁을 먹었는데 허기가 졌다. 찬장을 뒤져 너구리 한 봉지와 냄비를 찾았다. 거창한 음식을 해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물을 붓고 분말 수프, 플레이크, 다시마를 차례대로 넣었다. 빨간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면을 넣고 잠시 기다렸다가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었다. 냄비 가운데에 모인 면을 헤치고 계란을 하나 풀어놓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어머니가 부엌으로 나오셨다.

저녁 안 먹었어? 왜 라면을 먹어?”
먹었는데 배고파서요.”  

 식탁에 놓인 그릇에 라면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오이소박이가 있었다. 라면은 보통 배추김치와 먹곤 하는데, 냉장고에는 오이소박이뿐이었다. 부추와 양념에 범벅이 된 오이소박이가 과연 라면과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김치를 꺼내서 써는 게 귀찮아서 그냥 오이소박이를 먹기로 했다. 시큼하게 익은 것이 의외로 입에 잘 맞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 다시 취업 준비해야죠.”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거듭된 취업 실패 속에서 용기를 잃어가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육체의 짐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취업 후 부모님을 위한 계획도 많이 짰다. 일본 여행도 보내드리고, 회도 사드리고, 용산 CGV IMAX에서 액션 영화도 보여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허망한 표정으로 부엌 한쪽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

 사실, 내가 잘하는 음식이라고는 라면밖에 없다. “오빠, 요리할 줄 모르면 나중에 집에서 쫓겨날 걸”이라는 동생의 장난이 더 실감 나는 요즘이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없으니 취업 판에서 쫓겨난 것 같다. 세상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을 못 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래서 라면은 밥값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내가 내리는 벌인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나의 탓을 하지 않기에, 최소한의 양심으로 내리는 벌이 라면인 것 같다.

언제쯤 마음 편하게 라면을 끓여 먹는 날이 올까.
아니, 이제는 라면보다는 집밥을 맘 편히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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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수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당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세먼지 속 다이닝>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말 그대로 미세먼지가 가득한 광화문 광장에서 밥을 먹는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시간에 맞춰 3시에 갔다.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출석체크를 하고 스태프 목걸이를 찼다. 일은 간단했다. 레스토랑처럼 테이블을 세팅하고, 행사가 시작되면 음식을 운반하고 뒷정리를 하는 일이었다. 변수는 바람이었다. 바람에 테이블보가 펄럭펄럭거렸다. 고정이 필요해보였다. 저 멀리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야 ! 너! 저기 가서 호치캐스 받아와."

'언제 봤다고 반말을...'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하지만 배시시한 표정을 짓이기며 치밀어오르는 불쾌함은 천하무적 비비크림으로도 가릴 수 없다. 나는 운영테이블에 가서 스테이플러를 받아왔다. 그는 아주 중요하고 급박한 임무를 주는 보스처럼 내게 일을 설명했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테이블에 호치캐스를 박아. 알겠어?"

열심히 스테이플러를 박았다. 그 사이에 슬슬 손님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고 있었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봤는데, 몇몇 정치인들도 참여하는 규모 있는 행사 같았다. 일을 나눠주려고, 나에게 반말을 했던 '그'가 알바들을 불러모았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해야할 일을 알려드릴게. 잘 들어. (주절주절)"

A-Yo. 내빈을 의식했는지, 저절로 청년 일용직 노동자를 향해 존대를 하는 그의 태도 변화를 통해, 역시 '눈치'는 우리만의 고유한 단어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할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알바가 접대할 손님이 없는 노동이었으면 그는 꾸준히 반말을 했을 것이다. 이런 온도차를 보여주고 '왜 다들 이렇게 표정이 안 좋냐'라고 하면 무슨 말을 더 해줘야 하냐. 그래도 '그'는 자동으로 존대 패치가 되었지만,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돌아다니는 주최 측 아저씨 몇몇은 '야', '너', '이거 해, 저거 해' 등 시종일관 반말로 일관했다.

편견일 수 있겠으나, 이 행사가 정치인이 참여한, 정치적인 주장을 전개하는 행사임을 감안하고, 이 행사를 주최하고 기획하고 운영하는 중간관리자급 이상이 다 정치인이거나, 최소한 한두 군데 정치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역시 정치인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싶었다. 매번 총선, 대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허리가 부러져라 굽신 거리며, 팔꿈치와 어깨와 손아귀가 아작날 정도로 악수를 해대다가, '내빈'만 없어지면 다시 휘하 사람들에게 반말을 할 게 뻔해보였기 때문이다.

뭐... 그런 걸 느꼈다.

 

2.

일 세팅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는 우두커니 서서 행사를 지켜봤다. 왠지 나 빼고 다들 아는 사이 같았다. 원래 알던 사이거나, 일을 하면서 말을 튼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혹시 후자인지 판별하기 위해 옆에 있던 여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정중하게) 혹시 오늘 몇 시에 출근하셨어요?"
"(눈살을 찌푸리며) 세 시요."
"아..."

우리의 대화는 천막 아래, 통풍이 잘 되는 쾌적한 곳(태양을 막아주고, 바람도 선선한 곳)에서 이루어졌음을 감안해도, 그녀가 왜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이듯이 말했는지 알 수가 없다. 고된 노동으로 지친 걸 수도 있고, 이미 짜증이 나있는데 내가 말 걸어서 더 짜증이 난 걸 수도 있다. 말을 괜히 걸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니면 그냥 사람을 경계하는 걸 수도 있겠다.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 속을 어찌 알겠나.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평온하던 나도 짜증이 났다는 것이며,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정중하게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생판 몰라도 가급적 정중하게 그에게 대답해줬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굳이 정중하게 해야하나라는 현자타임도 맛보면서 퇴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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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불합격 메일이었다. 예의를 차린 말이지만, 메시지는 서늘했다. 이 메일을 마지막으로 나의 상반기는 끝이 났다. 또 취업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나는 그때 야마모토 후미오의 <결혼하고 싶어>를 읽고 있었다. 책을 내려놓고 벽을 바라보았다. 동기부여의 말들이 가득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보내는 글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힘내. 너의 이야기를 하자.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을 꾸깃꾸깃 접어 쓰레기통에 넣고 창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가서 청소기를 가져와 바닥을 쓸었다. 오랜 기간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빨아냈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은 금방 뽀득뽀득해졌다. 차곡차곡 쌓인 먼지들이 곳곳에 엉겨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브랜딩, 배달의민족 관련된 책들을 다 책장에 꽂았다. 책등이 보이지 않도록 꽂았다. 한동안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난 1년 4개월의 시간을 톺아보았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간 시기였다. 인턴을 하면서 야근도 즐겁게 했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라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뻤다. 찾아온 기회에도 감사했고,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스펙도 올리고, 그동안 했던 활동도 잘 정리했다. 2019년 상반기는 해낼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안고 2019년 1월을 맞이했다. 하나둘씩 올라오는 채용에 도전했고, 배달의민족 신입 모집에도 도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배민 신입은 몇 년만에 열리는 기회라서 정말 귀했다. 하지만 상반기는 초반부터 좋지 않았다. 3월부터 서류는 우후죽순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대 최악의 채용 시즌이라는 취업컨설턴트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배달의민족만 서류에서 합격했다. 서류 합격 결과 메일을 보고, 펑펑 울었다. 그만큼 좋아하는 회사였고, 그 회사가 유일하게 이번 상반기에 나에게 '만나보자'라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면접은 즐거웠다. 내가 가진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 배민의 마케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케팅, 실패한 마케팅의 사례, 내가 좋아하는 것(과제)을 소개하기. 좀 신나보였을 수도 있었을텐데, 절제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답변했다. 내가 면접 자리에서는 을이지만, 나도 엄연히 회사를 면접하러 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솔직한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들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래서 떨어졌나?) 물론 그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 참 행복했다.

 

1년동안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으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노력을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영을 해냈다. 배민 덕분에 이렇게 성장했고, 고난을 겪으며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기억했다.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왔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신입으로서 뭐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되었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를 할 각오도 되었다.

 

하지만, 떨어졌다.

점을 봐준 친구도 당황했고, 내 주변 베프들도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들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근시일 내에 시작될 나의 폭주가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보낸 개인톡에 그들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의 폭주가 무서웠다. 참기 위해 혼자서 글을 써야 했다.

 

나는 퍽 억울했던 모양이다. 난생 처음으로 채용팀에 메일을 보냈다.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려주신다면, 보완해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답신이 금방 왔다. 채용의 과정은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어 사유를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결코 민경님의 역량이나 성향이 부족함이 있어서 불합격 통보를 받으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성향이 부족함이 있던 것도 아니라면 나는 대체 왜 떨어진 걸까. 한 번 더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미저리 같아서 이내 그만두었다. 답답하다.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인상 비평인가. 내 외모가 못 생겨서? 팀이랑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일을 못할 것 같아서? 멘탈이 안 좋아보여서? 그냥 이민경이란 사람이 인상이 별로여서? 면접 때 너무 나대서? 친한 선배는 '브랜드에 관한 철학, 생각은 인터브랜드 사람들 못지 않게 많다'고 위로해줬다. 이 이상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나요 선배. 나의 유용성, 쓸모 있음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내 얘기를 했는데도,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최선을 다 했는데도, 모자란 재능을 채우기 위해 노력도 했는데도,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간절히 원해도,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을 배웠다.

마음이 너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잔인한 5월이다.

약 1시간 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취업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가급적 부담을 안 주시려는 긴장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수영도 재밌게 하고 있고, 몸도 건강하고,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취업 관련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질문을 하나 하셨다. 어느 쪽(직무)으로 지원하냐고. '영업이나 마케팅이죠'라는 내 대답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잠시 후..

 

"아들, 근데 마케팅이 뭐야?"

 

라고 질문하셨다. 그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왜 말문이 막혀버린 것일까.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브랜드, 상품, 서비스의 개발 단계부터, 고객의 손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매 단계를 관리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 대답은 뭔가 어머니를 단박에 이해시킬 수 없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써놓고 읽어보니까 되게 딱딱한 느낌이 든다. 절대 어머니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에게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너무 생소한 단어이기 때문에, 순간 나는 어떻게 하면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케터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내 브랜드에 사람들이 꽤나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 같다. 내가 무인양품의 마케터라고 생각해보자. 나는 무인양품의 상품이나 서비스 종류, 브랜드 철학, 마케팅 전략, 강조 포인트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브랜드, 상품, 서비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것이 마케터의 임무이리라. 하지만, 내가 아는 만큼, 혹은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소비자가 우리 상품,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불러오는 것 같다. 브랜드에 대해, 마케터와 소비자가 각각 지닌 지식의 격차가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원인이다. 어쩌면 궁극의 마케터는 유치원생에게 자기 브랜드를 납득시키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닐까 싶다.

 

마케팅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많은데, 나만의 정의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빗댈 수 있는 대상을 찾아봐야겠다.

 


 

어머니는 질문을 하나 더 하셨는데, 이 또한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러면 마케팅이랑 영업이랑은 어떻게 다른 거야?

"음.. 영업은 직접 파는 거고, 마케팅은 그것보다 더 넓은...(어버버)"

 

에라이... 이게 면접이었으면 나는 고배를 마셨겠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이게 면접장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사회에 진출하신 1980~90년대 한국에서는 마케팅 개념보다는 영업의 개념이 더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이 곧 영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영업과 마케팅은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업과 마케팅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네이버 국어사전에 쳐봤다.

영업: (경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

마케팅: (경제) 제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이전하기 위한 기획 활동. 시장 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촉진 따위가 있다. ‘시장 거래’, 시장 관리 순화.

 

고려대한국어사전에서 '마케팅'을 찾아봤다.

마케팅: (경제)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체계적인 경영 활동. 시장 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등이 이에 속하며, 소비자에게 최대의 만족을 주고 생산자의 생산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장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등이 이에 속하며'라는 구절에 주목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판매, 곧 영업은 마케팅 안에 포함된다. 마케팅이 상품, 서비스의 개발부터 소비자의 손에 도달할 때까지 치러야 하는 수많은 전투라고 본다면, 영업은 브랜드의 맨 앞에서 소비자를 공략하는 선봉대라고 볼 수 있겠다. 오 뭔가 명확해지는 느낌!

 

마케팅은 상품,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계획적인 활동이다. 좋은 품질의 상품, 서비스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전하여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활동이다. 기업에는 수익이 많아야 하고, 소비자에게는 가성비뿐만 아니라 가심비도 좋아야 한다. 성능이 좋으려면 상품 서비스 개발 때부터 마케터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적정한 가격에, 효율적인 배송 방법으로 고객의 눈 앞에 상품, 서비스를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우리 브랜드가 묻히지 않도록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한다. 이 각각이 결국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인가 보다. 그 선봉에 서서, 시장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우리 브랜드를 침투시키는 선봉대 같은 역할을 영업이 맡는 것 같다.

 

과연 좋은 설명일지 모르겠다.

일단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이대로 설명드려야겠다.

* 기독교적 색채가 있지만 뒤로 갈수록 옅어지는 글입니다. 종교가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좋습니다 :-) *

친한 형님이 목회를 하신다. 그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다. 신기하게도 다른 만큼 비슷한 점도 많았다. 힘들 때 서로 연락하던 것이 점점 돈독해져서 이제는 태평양을 사이에 놓고 문자로 연락하고 있다. 형님은 지금 '제국의 심장'인 워싱턴 D.C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형님과 실시간 연락이 될 때마다 정보통신기술에 감사하곤 한다.

 

얼마 전에 형님에게 감사드릴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얼마 뒤에 부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정말 오랜만에 교회에 갔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이 다가올 때마다 교회는 신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의미를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다. 부활절마다 교회에서는 삶은 계란을 나누어준다.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는 이름의 이 계란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그래서 사실, 주일학교 친구들에게는 부활절은, 삶은 계란을 먹는 날로 더 잘 기억된다. 나도 어린 시절 하나만 먹으면 될 걸, 욕심부리다가 체한 기억이 있다. 부활 매니아가 되고 싶었나 보다.

 

오랜만에 간 교회는 낯설지만 정겨웠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개근하던 성도인지라 교회는 어딜 가든 친근했다. 교회마다 기본은 비슷하기 때문일까. 역시 친근했다. 주보를 찬찬히 보면서 예배의 순서를 따라갔다. 속사포 랩처럼 읊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낯설 정도로 나는 교회를 오래 떠나 있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내 기억 저편의 창고에 들어가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용케 찾아왔다. 아버지의 낡은 LP판처럼 내 입에서 기도문은 재생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주일학교 6년 중고등부 6년이면 오늘의 성경구절을 읽고 그날의 설교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28장 1 ~ 10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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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 - 10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를 이야기로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지 사흘이 지나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때 지진이 나고 천사가 내려왔다. 천사는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우고 그 위에 앉아 여성들에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고, 예수님은 살아나셨으니까 가서 열두 제자들에게 빨리 가서 그의 부활을 알려라. 아마 먼저 갈릴리로 가고 계실 테니,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라"
여자들은 두려운 마음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열두 제자들을 향해 달려가던 중, 예수님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예수님이 "평안하냐(그간 잘 지냈니?)"라고 안부를 물으시니,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 예수님은 다시 "무서워하지 마라. (천천히)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해라. 거기서 만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구절을 읽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설교의 제목은 <속도를 늦추면>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설교를 듣고 간만에 펑펑 울었다... (점점 눈물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2. 속도를 늦추면

오늘의 키워드는 '빨리'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걸까. 쳇바퀴를 달리는 다람쥐처럼, 끝도 없는 경주를 하는 F1 운전자처럼 우리의 삶은 늘 분주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마케터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트렌드에 뒤쳐지는 순간 끝장난다는 생각이 늘 든다. 현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선배도 젊은 감각을 가진 친구들을 이길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작도 해보지 않았지만,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래서일까. '어쩌면 우리가 죽어라 달려가는 것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뒤쳐질까봐, 탈락할까봐 두려워서 우리는 일단 빠르게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목사님은 질문하셨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전해야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갈릴리로 가시니까 제자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라'라는 소식이다. 두려움과 기쁨에 휩싸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그들을 멈춘 것은 소식의 주인공인 예수님이었다. 그는 "뭐하고 있냐. 더 빨리 달려라."라고 여자들을 재촉하기 보다는, "평안하냐"라고 안부를 묻는다. 이 소식을 늦게 전할까봐 무서워하지 말고 천천히 가서 소식을 전하라고 여자들의 속도를 제어한다. 결국 우리는 그 소식 자체에 매몰되어 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대학, 취업, 결혼, 생활, 인간관계 그 자체에 매몰되어 삶 속에 녹아있는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취업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취업을 왜 하려는지, 나는 본질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삶 속에서 되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죽어라 달려가는 것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결국 예수님이 그들에게 건넨 질문인 "평안하냐?"라는 질문은

  • 너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니?
  • 내가 주는 평안함을 가끔은 좀 누리고 살고 있니?
  • 나를 붙들고, 믿고 평안히 길을 걸어 가고 있니?

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3. 두려움이라는 에너지의 한계

나의 2016년은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학점에 정말 말그대로 목숨을 걸고 공부를 했다.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고, 공부는 점점 강박이 되어 갔다. 뭔가를 배운다는 즐거움보다는, 학점이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공포감으로 1년을 살고 나니 연말에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정량적 가치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이 나였다. 인간의 연대, 협동보다는 내 한 몸의 성취가 가장 중요했다. 2017년 1월 1일에 1년간 얻은 평량평균을 보고 들었던 기분은 뿌듯함보다는 허무함이었다. 대체 뭘 위해 이렇게 공부를 했나라는 허무함만이 나를 감쌌다.

 

두려움, 공포감으로 1년을 살고 나니 연말에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삶의 원동력을 찾느라 2년을 방황했다. 아직도 급박해지면 엑셀부터 밟는 버릇이 종종 살아난다. 어떤 것에 대한 준비가 강박적으로 변할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멈춘다. 매일매일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수영을 하는 이유도 힘을 빼기 위함이다. 물 속에서 힘을 주는 순간 몸은 가라앉는다. 힘을 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라도 계속 레일을 돈다. 그러다보면 결국 지쳐서 몸에 힘이 빠져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물을 가장 잘 타게 된다. 가장 적은 힘을 들이고 앞으로 많이 나간다.

 

수영을 하는 나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 바쁜, 빠른 와중에도 잠시 멈춰서서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힘을 쭉 빼고 경쾌하게 흐느적거리면서 걸을 수 있는 사람
  • 물의 품에 안겨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헤엄을 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리자면,

다른 사람의 속도를 가끔 제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그간 반매체적 글쓰기를 해왔기 때문이죠. 사진, 동영상 등 이미지 중심 콘텐츠에 최적화된 인스타그램에 활자 무더기를 뿌렸습니다. 가벼운 내용보다 무거운 내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글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큽니다. 그래서 이제 긴 글은 티스토리 블로그에 씁니다(네 맞아요. 홍보입니다). 원하시는 분들만 읽을 수 있게요! 하지만, 오늘은 간만에 반매체적인 글을 쓸 예정입니다. “글로 안 써두면 영원히 안 할 것 같아서”가 첫번째 이유고요, "사전 홍보를 하려는 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저는 고2때부터 글을 썼습니다.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사춘기와 입시 스트레스가 주는 부담스러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매일 글을 썼습니다. 긴 글은 아니었고, 짧은 글을 툭툭 던졌습니다. 지금 봐도 혼돈 그 자체의 글입니다.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그 덕분에 글쓰는 습관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글을 썼던 걸까요?

 

펜시브를 보고 있는 해리포터

해리포터 시리즈에 ‘펜시브’라는 것이 나옵니다. 기억을 저장해놨다가 볼 수 있는 마법 기구죠. 덤블도어 교수는 복잡한 사건이나 고민을 마주했을 때 이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펜시브를 사용합니다. 저에게 '글은 곧 펜시브'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감정이 어떤지, 내가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수영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등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죠. 그래서 혼란스러울 때마다 제 자신과 저를 둘러싼 세계를 알기 위해 글을 썼나봅니다. 여러분은 언제 글을 쓰시나요?

 

그리고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 공감한다, 위로가 되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저 좋자고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인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019년 4월 19일의 저는 제게 도움을 주신 수많은 사람들의 파편이 모인 사람입니다. 오늘도 어떤 사람을 통해 새로운 파편을 몸에 넣겠죠. 그러면 4월 20일의 저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저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작은 파편이 되고 싶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파편이죠.

 

활주로를 꾸준히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이륙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래서 언젠가 <펜시브적 글쓰기>(가칭)라는 글쓰기 수업을 만들까 합니다. 글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글쓰기가 이른바 ‘이륙 및 순항’하기 위해서는 활주로를 꾸준히 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꾸준한 것은 쉽지 않죠. 혼자 이륙할 수 없다면 함께 활주로를 꾸준히 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 습관을 만드는 거죠. 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글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도 목표입니다.

 

'니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글을 가르치냐..' 라는 내적 울림이 큽니다. 그래서 일단 저부터 글을 꾸준히 써서 독립출판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그렇게 책을 몇 권 내면서 얻은 지식이나 노하우를 나누고 싶습니다. 가르치는 것 말고요, ‘공유'하고 싶습니다. 언제 수업을 만들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글로 안 써두면 영원히 안 할 것 같아서 반매체적 글쓰기를 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수업이 열렸을 때, 관심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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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브랜드 인턴 면접 때 팀장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신을 브랜드로 표현한다면 어떤 브랜드랑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냥 그 순간에 번쩍 생각나는 브랜드를 떠올리고, 답변을 했다.

 

TOMS의 로고

“TOMS 입니다.”

 

팀장님의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죠?”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그 질문이 오셨다. 왜? 왜죠? 왜냐? 와이? WHY? 이유가 뭐죠?

 

2.

TOMS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간단하게 TOMS에 대해 알아보자.

TOMS는 2006년에 미국의 사업가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만든 신발 및 의류 브랜드이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에,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고객이 신발을 한 켤레 구매할 때마다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한다는 One for One 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기부형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다. 초기에는 신발 위주로 상품을 구성하다가 의류, 안경, 커피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상품 카테고리는 늘어났지만, TOMS의 기본 가치관인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은 유지되었다. 안경을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안과 수술을 지원하고, 커피를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한다. 가방을 구매하면, 조산사 교육과 출산 키트를 제공하여 산모 한 명의 안전한 출산을 돕는다.

 

사실 처음에 TOMS를 좋아하게 된 건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과 브랜드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상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동아리 형이 TOMS를 신은 것을 보았다. 발에 감겨있는 듯한 디자인과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이 와닿았다. 충격을 완충하는 쿠션은 좋아보이지 않았으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신으면 달리기가 빨라질 것 같기도 하고, 날아다닐 수 있는 헤르메스의 날개신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TOMS 신발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TOMS의 비즈니스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신발을 구매하면, 신발이 필요한 어린이에게 신발을 기부한다는 점은 코끝을 찡하게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2014년에 처음으로 TOMS를 사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매년 한 켤레씩은 꼭 사는 것 같다.

 

3.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죠”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답변을 드렸다.

 

"TOMS의 주요 가치는 One for One입니다. 하나를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은 조언과 정신적, 물질적 지지를 통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것이 일이든 그 무엇이든,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임기응변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가끔 사람들이 내게 의견이나 조언을 물을 때가 있다. 책 좀 추천해 달라. 어떤 일을 좀 도와줄 수 있느냐.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주기보다는 ‘덤’을 얹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김영하 작가의 소설책 중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김영하 작가의 책 중 재밌었던 책만 추천해주는 것이 아니라, 김영하 작가와 유사한 작가의 소설책이나 김영하 작가의 다른 에세이도 추천해주는 것이다. 물론 투머치토커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곤 한다.

 

투머치토커하면 이 분...

일을 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못 찾겠으면 시키실 일이 없냐고 여쭈어보기도 했다. 덕분에 일은 원없이 했다(ㅋㅋㅋㅋ). 그 덕분에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더 잘하고 싶은데, 빈틈없이 상표 검색을 하고 싶은데, 더 번뜩이는 이름이나 스토리를 짓고 싶은데라는 욕심이 컸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컸다.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질의 성과물과 추가적인 퍼포먼스까지 내려고 하니까 탈이 날 수밖에.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 One for One의 가치는 늘 있다. 그래서 더 일을 잘하고, 내가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도 키워서 나처럼 고민 많고 생각 많은 20대 청년들을 돕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의 선배, 동기, 후배들의 많은 도움으로 오늘의 ‘나’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겸허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매일매일 나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TOMS를 보면서 해본다.

 

TOMS는 내가 닮고 싶은 브랜드다.

 

 

 

p.s)

TOMS에 대한 비판도 있다. TOMS가 기부를 하는 국가는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다. 개도국과 후진국의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1차, 2차 산업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TOMS는 신발 등의 기부를 통해 해당 국가의 2차 산업이 성장할 기회를 뺏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그 국가에서 투자를 통해 공장을 세워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TOMS가 앗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TOMS의 신발 기부가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많은 신발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TOMS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단순히, ‘그렇다면 TOMS는 불매해야겠네’라고 결정하면 되는 문제일까. 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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