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브랜드 인턴 면접 때 팀장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신을 브랜드로 표현한다면 어떤 브랜드랑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냥 그 순간에 번쩍 생각나는 브랜드를 떠올리고, 답변을 했다.
“TOMS 입니다.”
팀장님의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죠?”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그 질문이 오셨다. 왜? 왜죠? 왜냐? 와이? WHY? 이유가 뭐죠?
2.
TOMS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간단하게 TOMS에 대해 알아보자.
TOMS는 2006년에 미국의 사업가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만든 신발 및 의류 브랜드이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에,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고객이 신발을 한 켤레 구매할 때마다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한다는 One for One 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기부형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다. 초기에는 신발 위주로 상품을 구성하다가 의류, 안경, 커피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상품 카테고리는 늘어났지만, TOMS의 기본 가치관인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은 유지되었다. 안경을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안과 수술을 지원하고, 커피를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한다. 가방을 구매하면, 조산사 교육과 출산 키트를 제공하여 산모 한 명의 안전한 출산을 돕는다.
사실 처음에 TOMS를 좋아하게 된 건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과 브랜드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상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동아리 형이 TOMS를 신은 것을 보았다. 발에 감겨있는 듯한 디자인과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이 와닿았다. 충격을 완충하는 쿠션은 좋아보이지 않았으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신으면 달리기가 빨라질 것 같기도 하고, 날아다닐 수 있는 헤르메스의 날개신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TOMS 신발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TOMS의 비즈니스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신발을 구매하면, 신발이 필요한 어린이에게 신발을 기부한다는 점은 코끝을 찡하게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2014년에 처음으로 TOMS를 사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매년 한 켤레씩은 꼭 사는 것 같다.
3.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죠”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답변을 드렸다.
"TOMS의 주요 가치는 One for One입니다. 하나를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은 조언과 정신적, 물질적 지지를 통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것이 일이든 그 무엇이든,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임기응변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가끔 사람들이 내게 의견이나 조언을 물을 때가 있다. 책 좀 추천해 달라. 어떤 일을 좀 도와줄 수 있느냐.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주기보다는 ‘덤’을 얹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김영하 작가의 소설책 중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김영하 작가의 책 중 재밌었던 책만 추천해주는 것이 아니라, 김영하 작가와 유사한 작가의 소설책이나 김영하 작가의 다른 에세이도 추천해주는 것이다. 물론 투머치토커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곤 한다.
일을 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못 찾겠으면 시키실 일이 없냐고 여쭈어보기도 했다. 덕분에 일은 원없이 했다(ㅋㅋㅋㅋ). 그 덕분에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더 잘하고 싶은데, 빈틈없이 상표 검색을 하고 싶은데, 더 번뜩이는 이름이나 스토리를 짓고 싶은데라는 욕심이 컸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컸다.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질의 성과물과 추가적인 퍼포먼스까지 내려고 하니까 탈이 날 수밖에.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 One for One의 가치는 늘 있다. 그래서 더 일을 잘하고, 내가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도 키워서 나처럼 고민 많고 생각 많은 20대 청년들을 돕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의 선배, 동기, 후배들의 많은 도움으로 오늘의 ‘나’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겸허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매일매일 나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TOMS를 보면서 해본다.
TOMS는 내가 닮고 싶은 브랜드다.
p.s)
TOMS에 대한 비판도 있다. TOMS가 기부를 하는 국가는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다. 개도국과 후진국의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1차, 2차 산업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TOMS는 신발 등의 기부를 통해 해당 국가의 2차 산업이 성장할 기회를 뺏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그 국가에서 투자를 통해 공장을 세워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TOMS가 앗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TOMS의 신발 기부가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많은 신발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TOMS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단순히, ‘그렇다면 TOMS는 불매해야겠네’라고 결정하면 되는 문제일까. 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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