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시장이 열린 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간다. 꽤나 많은 자소서를 쓸 줄 알았는데, 상반기 공채는 생각보다 열리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고, 자리는 줄어든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뉴스가 매일 나온다. 불경기라서 안 열린 것이겠지라는 위로는 현재 내 상황에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취업시장에서 취준생을 가장 괴롭히는 건 자기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개인에게 찾아오는 우울한 일들이 있긴 하다. 바로 '불합격 통보’. 귀하의 성명이 명단에 없다는 말을 접하면 튼튼하던 자아라도 잠시 주춤한다. 문제는 튼튼하지 않은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회사로부터 받은 데미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넣는 순간 자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나이도 많은데, 또 백수가 되는 건가. 레드오션에 불경기에 결국 치열한 경쟁 뿐이구나. 날고 긴다는 사람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겠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단어와 문장이 줄줄이 엮어서 머리 속에 쏟아지면 취준생들은 이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는 것이었다.

회사로부터 받은 데미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넣는 순간 자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3월 말. 자소서도 어느 정도 일단락 나고 이제는 인적성의 시기가 오고 있다. 아직 어떤 기업도 서류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엄습하는 두려움이 있어서 요즘의 나는 삶이 좀 무겁다. 나이도 많고, 하고 싶은 분야는 정했지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것에서 뒤쳐진 느낌이다. 집도, 돈도, 안정감도, 소속감도 없는 그 어떤 끈도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단톡방에 좋은 와인, 뮤지컬 공연, 항공권의 초특가 할인 프로모션이 나와도 섣불리 구매할 수 없는 것이 내 현주소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꿈도 어쩌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남들처럼 사는 게 가장 힘들다는 말은 나를 다시 좌절시킨다. 걱정과 고민을 친한 사람들에게 털어놓을까 생각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기에, 그들의 삶도 충분히 힘들기에 나는 이내 말을 줄인다. 나라는 사람이 ‘힘들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라는 것도 싫었다. 다들 각자의 몫만큼의 짐을 지고 사는 것이리라.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꿈도 어쩌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그래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지.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아침 수영을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물로 도망을 간다. 어린 시절 물을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이제는 물로 도피를 하고 있다니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많지만, 힘을 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인 것 같다. 물에 뜨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없다. 그저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서 평온히 숨을 쉬면 된다. 나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은, 어쩌면 무중력과 유사한 상태. 그 안에서는 어떠한 짐을 짊어져도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불안함이 잠식하는 밤을 잊기 위해 노래를 틀거나, B cast를 틀고 잔다. 친구는 잘 때도 브랜드 관련 팟캐스트를 듣는 미친놈이라고 나를 놀렸다. 그런데 브랜드 공부를 위해서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나는 고요한 그 밤이 너무 불안해서, 소속된 곳 없이 방 한 칸만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이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없으면 너무 적막해서, 박지윤 씨의 목소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밤도 B cast를 들으면서
불안함이 잠시라도 멈추는 밤이 오길 기다린다.

“안녕하세요, B cast 청취자 여러분. 박지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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