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적 색채가 있지만 뒤로 갈수록 옅어지는 글입니다. 종교가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좋습니다 :-) *

친한 형님이 목회를 하신다. 그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다. 신기하게도 다른 만큼 비슷한 점도 많았다. 힘들 때 서로 연락하던 것이 점점 돈독해져서 이제는 태평양을 사이에 놓고 문자로 연락하고 있다. 형님은 지금 '제국의 심장'인 워싱턴 D.C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형님과 실시간 연락이 될 때마다 정보통신기술에 감사하곤 한다.

 

얼마 전에 형님에게 감사드릴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얼마 뒤에 부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정말 오랜만에 교회에 갔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이 다가올 때마다 교회는 신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의미를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다. 부활절마다 교회에서는 삶은 계란을 나누어준다.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는 이름의 이 계란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그래서 사실, 주일학교 친구들에게는 부활절은, 삶은 계란을 먹는 날로 더 잘 기억된다. 나도 어린 시절 하나만 먹으면 될 걸, 욕심부리다가 체한 기억이 있다. 부활 매니아가 되고 싶었나 보다.

 

오랜만에 간 교회는 낯설지만 정겨웠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개근하던 성도인지라 교회는 어딜 가든 친근했다. 교회마다 기본은 비슷하기 때문일까. 역시 친근했다. 주보를 찬찬히 보면서 예배의 순서를 따라갔다. 속사포 랩처럼 읊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낯설 정도로 나는 교회를 오래 떠나 있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내 기억 저편의 창고에 들어가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용케 찾아왔다. 아버지의 낡은 LP판처럼 내 입에서 기도문은 재생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주일학교 6년 중고등부 6년이면 오늘의 성경구절을 읽고 그날의 설교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28장 1 ~ 10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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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 - 10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를 이야기로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지 사흘이 지나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때 지진이 나고 천사가 내려왔다. 천사는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우고 그 위에 앉아 여성들에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고, 예수님은 살아나셨으니까 가서 열두 제자들에게 빨리 가서 그의 부활을 알려라. 아마 먼저 갈릴리로 가고 계실 테니,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라"
여자들은 두려운 마음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열두 제자들을 향해 달려가던 중, 예수님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예수님이 "평안하냐(그간 잘 지냈니?)"라고 안부를 물으시니,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 예수님은 다시 "무서워하지 마라. (천천히)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해라. 거기서 만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구절을 읽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설교의 제목은 <속도를 늦추면>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설교를 듣고 간만에 펑펑 울었다... (점점 눈물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2. 속도를 늦추면

오늘의 키워드는 '빨리'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걸까. 쳇바퀴를 달리는 다람쥐처럼, 끝도 없는 경주를 하는 F1 운전자처럼 우리의 삶은 늘 분주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마케터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트렌드에 뒤쳐지는 순간 끝장난다는 생각이 늘 든다. 현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선배도 젊은 감각을 가진 친구들을 이길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작도 해보지 않았지만,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래서일까. '어쩌면 우리가 죽어라 달려가는 것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뒤쳐질까봐, 탈락할까봐 두려워서 우리는 일단 빠르게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목사님은 질문하셨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전해야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갈릴리로 가시니까 제자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라'라는 소식이다. 두려움과 기쁨에 휩싸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그들을 멈춘 것은 소식의 주인공인 예수님이었다. 그는 "뭐하고 있냐. 더 빨리 달려라."라고 여자들을 재촉하기 보다는, "평안하냐"라고 안부를 묻는다. 이 소식을 늦게 전할까봐 무서워하지 말고 천천히 가서 소식을 전하라고 여자들의 속도를 제어한다. 결국 우리는 그 소식 자체에 매몰되어 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대학, 취업, 결혼, 생활, 인간관계 그 자체에 매몰되어 삶 속에 녹아있는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취업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취업을 왜 하려는지, 나는 본질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삶 속에서 되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죽어라 달려가는 것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결국 예수님이 그들에게 건넨 질문인 "평안하냐?"라는 질문은

  • 너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니?
  • 내가 주는 평안함을 가끔은 좀 누리고 살고 있니?
  • 나를 붙들고, 믿고 평안히 길을 걸어 가고 있니?

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3. 두려움이라는 에너지의 한계

나의 2016년은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학점에 정말 말그대로 목숨을 걸고 공부를 했다.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고, 공부는 점점 강박이 되어 갔다. 뭔가를 배운다는 즐거움보다는, 학점이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공포감으로 1년을 살고 나니 연말에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정량적 가치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이 나였다. 인간의 연대, 협동보다는 내 한 몸의 성취가 가장 중요했다. 2017년 1월 1일에 1년간 얻은 평량평균을 보고 들었던 기분은 뿌듯함보다는 허무함이었다. 대체 뭘 위해 이렇게 공부를 했나라는 허무함만이 나를 감쌌다.

 

두려움, 공포감으로 1년을 살고 나니 연말에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삶의 원동력을 찾느라 2년을 방황했다. 아직도 급박해지면 엑셀부터 밟는 버릇이 종종 살아난다. 어떤 것에 대한 준비가 강박적으로 변할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멈춘다. 매일매일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수영을 하는 이유도 힘을 빼기 위함이다. 물 속에서 힘을 주는 순간 몸은 가라앉는다. 힘을 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라도 계속 레일을 돈다. 그러다보면 결국 지쳐서 몸에 힘이 빠져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물을 가장 잘 타게 된다. 가장 적은 힘을 들이고 앞으로 많이 나간다.

 

수영을 하는 나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 바쁜, 빠른 와중에도 잠시 멈춰서서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힘을 쭉 빼고 경쾌하게 흐느적거리면서 걸을 수 있는 사람
  • 물의 품에 안겨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헤엄을 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리자면,

다른 사람의 속도를 가끔 제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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