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인생의 답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보자. 이곳은 교무실이다. 당신(혹은 나)은 수능을 앞두고 진로 상담을 하고 있다. 선생님 저는 가고 싶은 과가 딱히 없어요. 당신의 말에 선생님이 답한다. 일단 그건 대학에 가서 고민하자. 우선, 대학에 가야지.
대학에 가면 인생이 해결될 줄 알았다. 정말이다. 우리의 정규 교육 과정 12년을 돌아보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을 차근차근 밟았다. 12년의 매순간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나는 그것이 감히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유행한 드라마 <스카이캐슬>도 그런 것 아닌가. 대학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를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건대, 당시 나에게 ‘대학’이라는 존재는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강하게 와닿기 시작했다. 내신과 수능 1점에 따라 대학이 좌우되며, 대학에 의해 인생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지금 가진 고민들이 좋은 대학, 좋은 과에 가면 다 해결이 될 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아니었다. 대학은 인생의 답이 아니었고, 새로운 문제였다. 문제는 문제였는데,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들이었다. 고등학교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나 평가원이 출제한 문제를 내가 푸는 방식이었다면, 대학에서는 문제도 내가 내고, 답도 내가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더 작은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문제의 가지수는 무한정 증가했다. 매순간이 문제였고, 그걸 풀어나가야 했다. 외계인이 이 광경을 지구 상공에서 봤으면 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쟤네는 왜 지들이 문제를 내고 지들이 괴로워 하냐”
물론 대학이라는 이름이 일정 부분 담보해주는 것은 있지만, 점점 그런 부분은 옅어져가고 있다. 교수님들은 종종 당신들께서 사셨던 호시절을 말씀해주시곤 했다. “도서관 앞에 관광버스가 와있는데, 삼성, 현대, 대우 팻말이 붙어있는 거야. 그냥 아무거나 골라 타면 합격이었어”(아 부럽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각자 자기 이름이 적힌 팻말(수험표)을 붙이고, 기업 앞에서 자신을 알린다. 기업의 선택을 받으면 입사하는 것이다. 상황의 역전이다. 그나마도 이제 대학 이름을 뛰어 넘어, '실무, 직무 중심의 채용' 분위기로 바뀌었으니, 학교 이름만 좋다고 취업하는 시기는 완전히 종말을 고한 것이다. 대학은 답이 아니었다.
내 목전에는 ‘취업’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놓여 있다. 직업을 취해, 노동력을 팔아 자본을 생산하는 일. 취준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석방날짜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만든다. 부푼 기대감과 함께 취업 후의 낭만을 그린다. 해외여행 가기, 취미 만들기, 요가 다니기, 외국어 공부하기, 옷 잔뜩 사기 등등. 이 모든 희망사항 앞에는 가정문 하나가 붙는다. [취업만 된다면]. 나도 ‘취업만 된다면’ 가정법을 머리 속에 종종 펼치곤 한다. 취업이라는 답이 주는 희망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취준생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취준생에게 취업은 곧 답이다. 취업만 해결하면 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 신입생 때로 돌아가보자. 기대했던 대학의 모습과 내가 경험하던 대학의 모습이 얼마나 같았는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멋진 수식어가 있던 자리에는 학점의 상아탑이 있었고, 벽돌 하나에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았던 학교에는 회의감만 감돌았다. 대학은 답이 아니었다. 과연 회사라고 안 그럴까.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면 회사도 비슷할 것이다. 취업을 했다고 해서, 인생의 대로가 열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기대와 다를 것이며, 새로운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로부터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라고 한다. 대학이 곧 정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취업도 정답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취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 마스터키 같은 기능을 기대하지는 말자. 오히려 대학 때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내게 던져야 하고, 그 수많은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나서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대학 때보다 더 치열했으면 치열했지, 덜 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은 우리가 배우러 가는 곳이지만, 회사는 일을 배우는 동시에, 일을 통해 자신의 배움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에 절대적인 정답이란 것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스터키 같은 답은 없고, 인생의 각 시기마다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놓고 보더라도, ‘노후'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취업도 궁극의 정답이 아닐 것이다. 취업을 하면, 다음 문제가 내게 다가오겠지. 경계할 것은, 대학 새내기때처럼 현실에 안주해 나태해지는 태도다. 끊임없이 묻고, 이해해서 일을 배우자. 한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를 계발하자.
일단, 취업을 하자.
단순히 어디든 들어가야지라는 마음보다는, 내가 희망하는 길을 바탕으로 정하는 현명함을 갖고 취업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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