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최인아 책방>에서 한명수 CCO님(이하 상무님)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제목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미지와 영상을 다루는 사람은 어떻게 사고하는지 그 방법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역시 기대했던 것처럼 상무님의 장표 첫 장은 힙했다. 

 

 

세바시 강연에서도 뵀지만 역시나 유쾌하신 분이다. 보고 있는 사람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먼저 막 돌파하시는 분 같다. 이런 분들 보면 에너지 고갈이 걱정된다. 사실 나도 그런 편이다.

 

1. 나는

자기를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 나 스스로 나를 이해하는 방법

-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방법

 

전자는 오류투성이이므로, 상무님은 후자에 도전하셨다.

 

상무님의 우형 입사 3개월 후, 봉대표님이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고 한다.

"이사님, 우리 브랜드 안 사랑하시죠?"라고 하셨을 때 상무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네, 안 사랑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과연 내가 상무님 입장이었을 때 저렇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답변하신 상무님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흥미롭게 들으신 봉대표님도 놀랍다. 

 

그리고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봉대표님께 카톡을 하나 보내셨단다. "대표님, 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대표님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기다려달라고 하시고, 얼마 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브랜드 옷을 각각의 상황에 맞춰 가장 잘 입는 센스 충만한 디자이너"라는 답변을 보내셨다고 한다. 이에 감동받으신 상무님은 카카오 이모티콘이 아닌, 라인 이모티콘을 캡처하고 크롭 해서 보냈다고 한다. 진정성을 담은 성의의 표시였으리라.

 

나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진정성 있고 또 꽤나 잘 맞는 답변을 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나 외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 고민으로 답변을 진심을 다해 만드는 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그렇게 점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계시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일까

 


 

나의 2017년이 생각났다. 정말 상무님 표현대로 '나는 ㅈ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해였다. 세상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매정한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하지만 묘한 위로가 찾아왔는데,

 

아 그러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그 덕분에 1년 간 내 멋대로 살았다. 책도 내고, 평창 올림픽도 다녀오고, 상반기 준비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인턴도 하고, 뭐 진짜 이것저것 많이 했다. 덕분에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알아가야지. 그 과정에서 감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요즘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닌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준 친구에게도 고맙다고 하고, 거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고맙다고 한다. 그 모든 사람들의 조각이 모여서 오늘도 나는 나를 구성하며, 나는 나를 조금 더 알아간다. 

2. 손이 생각

상무님은 디자이너이다. 즉,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은 손이 생각한다. 손에 뇌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배민에 왔을 때 상무님은 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했다. 그니까 정말 눈에 보이는 문제는 싹 다 그의 몫이었던 것이다.

 

  • 배민의 Vision Ver.2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

이 문구를 봉대표님이 만들었을 때, 바로 손이 나가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곳은 약간 사람 뛰는 것처럼 표현해봤다(폴짝)

 

곳을 사람처럼 해봤어요. 곳! 곳! 곳!!!!! 어때? 사람같져?!!!! 곳!! 곳!!!!

 

내 생각) 개인적으로 이 슬로건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배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배달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표어다. 글쟁이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글..

 

  • 어슷한 디자인 - 반찬 패키지

상품의 품질은 그대로인데, Visual적 요소(Package)를 바꾸니 소비자들이 맛을 다르게 느낀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기한 일!

 

내 생각) 과연 카피, 글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미지의 힘일까? 그렇다면 나도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 문화(文畫 - 글과 그림) 대통합을 이루리라!

 

  • 양이 질을 압도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을 생산하다 보면 '오 이거 괜찮은데?' 싶은 게 나오는데, 그게 진짜 괜찮은 것이다.

 

내 생각) 모든 창의노동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얘기 같다. 예전에 애드쿠아 인터랙티브 AE님 강의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좋은 카피는 어떻게 쓰나요 라는 질문에, '그냥 쓰세요.  멈추지 말고 쓰세요.'라는 답을 해주셨다. 즉, 좋은 카피가 3번째에 나올지, 48번째에 나올지, 27,494번째에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도 그런가 보다.

 

  •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하는 디자이너"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니까 나를 쳐다보는구나

1세대 웹디자이너로 출발 -> 웹 디자인 에이전시 -> 다양한 회사

 

  • 제약조건을 이겨내는 훈련 -> 매우 중요하다

ex) 모음 i, o를 쓰지 않은 소설

너 이 기능 쓰지 말고 그려봐.

-> '자유롭게 하세요~' 하면 아웃풋은 대개 다 망한다. 제약조건을 걸고 하는 훈련은 고통스럽지만 아웃풋이 있다.

 

내 생각) 역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험난한 곳에 던져야 성장한다.

 

  • 남들이 하는 걸 엄청 잘하게 vs. 남들이 안 하는 걸 조금 잘하게

선택의 문제. 상무님은 후자를 선택했다.

 

  • 뭔가를 다룰 때 쪼잔하고, 쩨쩨하게 다루기

내 생각) 쇼호스트 출신 황현진 강사님께 '말하기'에 대해서 배운 것이 기억났다. 황현진 강사님은 영업의 말하기도 결국 설득이며,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짜잘하고, 쪼잔하고, 찌질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도록. 결국 이 지점이 글과 이미지의 접합점인 것 같다.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면, 최대한 글로 짜질, 쪼잔, 찌질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ex. 숙취해소제

- 이 약은 숙취해소에 직빵입니다.

- 사장님. 요즘 연말인데 회식이 잦으시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술냄새, 고기 냄새난다고 피하고, 사모님은 한숨 푹~ 쉬시고...

근데 이 약 하나만 드시면, 회식 다 끝나고 말끔한 모습으로 치킨 한 마리 사들고 들어가실 수 있어요~ 애들이 우리 사장님을 너무 좋아하지 않을까요?

 

  • 일반적인 대기업 회의 분위기

- 이상하다.. 괜히 엄숙하다.. (나는 사진 찍지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회의에서 추상적이고 실재가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 다들 말만 하지, 손을 쓰지 않는다.

 

-> "아!! 시각적 소통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자"
-> "펜을 드세요. 칠판에 그려보세요. 제가 팔꿈치를 받쳐드릴게요. 그려보세요."

 

Q. 왜 시각적 소통을, 사람들은 두려워할까? 어차피 결국은 만들 거잖아. 뭐가 됐든 표현해라!!

 

  • 상무님의 임무: "시각적 경청자"로서 '시각 소통 가능자'와 '시각 소통 불가자'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
  • 어슷하게 하기 : 만화로 보고서 작성하기
    --> 아무도 읽지 않던 보고서를 사람들이 보기 시작.
    --> 보고서 마지막 장에 절취선으로 이것만 보세요 부분이 너무 인상 깊음

만화로 작성한 보고서. 인기폭발.
절취선을 보고 소름...

  • 창작을 하려면 진짜 선생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쑥쑥 성장한다.
  • 구조를 봤기 때문에 진짜를 본다
  • 안도감을 느끼면 그 순간 넌 끝이야!
    --> ㄹㅇ인 듯
  • 우리가 할 일을 사람들이 눈으로 보게 만들어야 한다.

ex. 배달 로봇 딜리 론칭 영상 (개고생 했음)

: 우리나라에서 배달 로봇은 아무도 안 했으니까 제일 먼저 해야지~ [포지션 선점]

https://youtu.be/FkkZQjZ_-oM

 

하지만, 이 영상은

구성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새로운 비전'이 되고,

소비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우형은 단순 배달회사가 아니라 IT 인공지능 개발회사구나'라는 것이 생긴다.

 

3. 진짜 vs 가짜

1) 참에 대한 궁금함

* 겉과 속이 일치해야 진실이다 --시각적 사고는 바깥을 보고 안을 읽어낸다

 

겉과 속이 일치해야 진실. 그 경계에 디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2) 면접하지 말고, 우리 대화해요.

"진짜 너의 얘기를 해줘!!!"

(당신이 대학생 때로 돌아갔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때 어떻게 말했나요?)

- 다들 어려워한다. 왜 힘들까.

- 그 안에 분명히 진짜 자기가 있는데... 제발 꺼냈으면!

 

  •  오리지널(Original)

"똑같이 하세요. 근데 새롭게는 보여야 해요."

대학교 교과서가 말하는 브랜드 디자인 : 일관성, 타당성 --> 현실에서는 ㄴㄴ
--> 하지만 배민은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 창의 노동의 회복 -- 트렌드를 따르는 순간 트렌드의 노예가 된다
  • 디자인 결과물은 정직하다
  • 일관성: 사장님들 메뉴 사진은 무조건 디자인 팀에서 촬영. 빛. 조도. 방향 등을 다 설정
  • 업무보고서

    - 사진 + 에세이 구조. 무조건 타 직군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라. 화이트 밸런스란 말 말고 쉽게 쉽게!!

    - "행복하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신기)

    - 감정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행복하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업무 보고서. 타 직군의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유치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 제약 조건을 훈련하자.
  • 우리는 누구와 협업하든, 늘 하던 것을 한다.
  • 의사결정 과정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느껴지도록 공유한다

    -- 반드시 경험하도록, 특히 재미있게 경험하도록

    -- 재미있는 일은 재미있게 결정한다.

  • 배민의 자원은 외부에서 끌어다 쓴다 - 신춘문예, 치킨 소믈리에

이 아저씨도 배민의 자원. 아니면 배가 고프거나.

  • 일하는 사람의 반응과 대화에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 충만했다 허무했다

 

이 둘의 반복이 삶이 아닐까.

팀 내부에서 정서적으로 즐거운 느낌을 만드는 것이 나(상무님)의 임무!

 

"시각적 훈련하기" :컵을 컵으로 보지 않기. 다르게 보기
ex.)ㅋㅋ페스티벌 ㅋ인증샷 이벤트

 

5. 그래서...

"한 분야의 창조적 사고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세바시 영상으로만 뵀을 때는 그저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는데, 오늘 강연을 듣고 나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솔직한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 걸지 모르겠다.

 

"저는 글로 자신을 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감정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무겁고, 우울하고 심오한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면접이나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이것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대리님, 점심 먹고 오니까 지금 제 배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해야 할까요.."

 

상무님은 내가 글을 쓸 것처럼 생겼다(덧붙여, 윤동주를 닮았다고...)라고 하시고, 이내 진지해지셨다.

 

"일단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해요. 나는 일이고 사람이고 뭐고 돈이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 자신을 숨기세요. 하지만 나는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과 정말 일하고 싶다' 싶으면, 표현은 좀 이상해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세요. 그 자리가 물론 긴장이 되는 자리인데, 다 아저씨들이에요. 저는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계속 스스로에게 얘기했어요. '아저씨야. 아저씨야. 아저씨야.', '이 건물 나오면 내가 '저기요, 아저씨' 할 수 있는 아저씨야', '명함이 없으면 아저씨야. 아저씨야. 아저씨야'를 계속 말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기업에 면접받으러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기업을 면접한다고 생각하고 가세요."

 

...

질문하기 참 잘했다.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쭉 빠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자꾸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분장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건데, 남들도 좋아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있어보이는 것', 'RGRG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냥 내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답을 생각해야겠다.

 

집으로 가던 길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 영화 <족구왕>

 


조직문화를 만들고, 회사 내부의 '창의 노동 집단'의 자원들을 자극해서 최대의 성과를 내게 하고, 슬로건도 쓰고, 붓글씨도 쓰고, 비누도 깎고, 앱도 디자인하고, 직원들이 잘하면 즉석 상장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고, 낙서하도록 유도도 하고, 망한 서비스의 그림을 재활용도 하고, 이제는 하다 하다 로봇 디자인까지 하는 한명수 상무님의 삶은 말 그대로 몸을 쓰는 사람의 삶이었다. 예술가라 하면 뭔가 카페에서 망중한을 보내면서 영감을 얻으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상무님이 말씀하신 디자이너는 그것과 달랐다. 배민의 디자인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창의노동이라는 단어가 뇌에 강하게 박혔다. 내가 하는 글쓰기도 창의노동이 될 수 있기를.

 

상무님은 디자이너이기에 앞서, 명함, 소속, 종교, 인종, 성별 등을 다 떼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이 나라는 존재를 보장한단 말인가. 영원한 회사도 없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에 대한 고민은 멈춰서는 안 되겠다. '혼자 고민하면 오류투성이'라고 상무님은 말씀하셨다. 결국 필요한 건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나에 대해 고민해주고 표현해주는 좋은 사람들, 좋은 동료들이겠다.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어서, 한명수 상무님은 조금 더 자기 자신이라는 진리에 다가가고 있으신 것 같다. 부럽다.

 

내성적인 사람 둘 

아무튼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 기독교적 색채가 있지만 뒤로 갈수록 옅어지는 글입니다. 종교가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좋습니다 :-) *

친한 형님이 목회를 하신다. 그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다. 신기하게도 다른 만큼 비슷한 점도 많았다. 힘들 때 서로 연락하던 것이 점점 돈독해져서 이제는 태평양을 사이에 놓고 문자로 연락하고 있다. 형님은 지금 '제국의 심장'인 워싱턴 D.C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형님과 실시간 연락이 될 때마다 정보통신기술에 감사하곤 한다.

 

얼마 전에 형님에게 감사드릴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얼마 뒤에 부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정말 오랜만에 교회에 갔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이 다가올 때마다 교회는 신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의미를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다. 부활절마다 교회에서는 삶은 계란을 나누어준다.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는 이름의 이 계란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그래서 사실, 주일학교 친구들에게는 부활절은, 삶은 계란을 먹는 날로 더 잘 기억된다. 나도 어린 시절 하나만 먹으면 될 걸, 욕심부리다가 체한 기억이 있다. 부활 매니아가 되고 싶었나 보다.

 

오랜만에 간 교회는 낯설지만 정겨웠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개근하던 성도인지라 교회는 어딜 가든 친근했다. 교회마다 기본은 비슷하기 때문일까. 역시 친근했다. 주보를 찬찬히 보면서 예배의 순서를 따라갔다. 속사포 랩처럼 읊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낯설 정도로 나는 교회를 오래 떠나 있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내 기억 저편의 창고에 들어가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용케 찾아왔다. 아버지의 낡은 LP판처럼 내 입에서 기도문은 재생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주일학교 6년 중고등부 6년이면 오늘의 성경구절을 읽고 그날의 설교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28장 1 ~ 10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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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 - 10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를 이야기로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지 사흘이 지나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때 지진이 나고 천사가 내려왔다. 천사는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우고 그 위에 앉아 여성들에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고, 예수님은 살아나셨으니까 가서 열두 제자들에게 빨리 가서 그의 부활을 알려라. 아마 먼저 갈릴리로 가고 계실 테니,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라"
여자들은 두려운 마음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열두 제자들을 향해 달려가던 중, 예수님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예수님이 "평안하냐(그간 잘 지냈니?)"라고 안부를 물으시니,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 예수님은 다시 "무서워하지 마라. (천천히)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해라. 거기서 만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구절을 읽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설교의 제목은 <속도를 늦추면>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설교를 듣고 간만에 펑펑 울었다... (점점 눈물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2. 속도를 늦추면

오늘의 키워드는 '빨리'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걸까. 쳇바퀴를 달리는 다람쥐처럼, 끝도 없는 경주를 하는 F1 운전자처럼 우리의 삶은 늘 분주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마케터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트렌드에 뒤쳐지는 순간 끝장난다는 생각이 늘 든다. 현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선배도 젊은 감각을 가진 친구들을 이길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작도 해보지 않았지만,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래서일까. '어쩌면 우리가 죽어라 달려가는 것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뒤쳐질까봐, 탈락할까봐 두려워서 우리는 일단 빠르게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목사님은 질문하셨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전해야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갈릴리로 가시니까 제자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라'라는 소식이다. 두려움과 기쁨에 휩싸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그들을 멈춘 것은 소식의 주인공인 예수님이었다. 그는 "뭐하고 있냐. 더 빨리 달려라."라고 여자들을 재촉하기 보다는, "평안하냐"라고 안부를 묻는다. 이 소식을 늦게 전할까봐 무서워하지 말고 천천히 가서 소식을 전하라고 여자들의 속도를 제어한다. 결국 우리는 그 소식 자체에 매몰되어 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대학, 취업, 결혼, 생활, 인간관계 그 자체에 매몰되어 삶 속에 녹아있는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취업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취업을 왜 하려는지, 나는 본질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삶 속에서 되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죽어라 달려가는 것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결국 예수님이 그들에게 건넨 질문인 "평안하냐?"라는 질문은

  • 너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니?
  • 내가 주는 평안함을 가끔은 좀 누리고 살고 있니?
  • 나를 붙들고, 믿고 평안히 길을 걸어 가고 있니?

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3. 두려움이라는 에너지의 한계

나의 2016년은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학점에 정말 말그대로 목숨을 걸고 공부를 했다.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고, 공부는 점점 강박이 되어 갔다. 뭔가를 배운다는 즐거움보다는, 학점이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공포감으로 1년을 살고 나니 연말에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정량적 가치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이 나였다. 인간의 연대, 협동보다는 내 한 몸의 성취가 가장 중요했다. 2017년 1월 1일에 1년간 얻은 평량평균을 보고 들었던 기분은 뿌듯함보다는 허무함이었다. 대체 뭘 위해 이렇게 공부를 했나라는 허무함만이 나를 감쌌다.

 

두려움, 공포감으로 1년을 살고 나니 연말에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삶의 원동력을 찾느라 2년을 방황했다. 아직도 급박해지면 엑셀부터 밟는 버릇이 종종 살아난다. 어떤 것에 대한 준비가 강박적으로 변할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멈춘다. 매일매일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수영을 하는 이유도 힘을 빼기 위함이다. 물 속에서 힘을 주는 순간 몸은 가라앉는다. 힘을 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라도 계속 레일을 돈다. 그러다보면 결국 지쳐서 몸에 힘이 빠져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물을 가장 잘 타게 된다. 가장 적은 힘을 들이고 앞으로 많이 나간다.

 

수영을 하는 나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 바쁜, 빠른 와중에도 잠시 멈춰서서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힘을 쭉 빼고 경쾌하게 흐느적거리면서 걸을 수 있는 사람
  • 물의 품에 안겨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헤엄을 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리자면,

다른 사람의 속도를 가끔 제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그간 반매체적 글쓰기를 해왔기 때문이죠. 사진, 동영상 등 이미지 중심 콘텐츠에 최적화된 인스타그램에 활자 무더기를 뿌렸습니다. 가벼운 내용보다 무거운 내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글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큽니다. 그래서 이제 긴 글은 티스토리 블로그에 씁니다(네 맞아요. 홍보입니다). 원하시는 분들만 읽을 수 있게요! 하지만, 오늘은 간만에 반매체적인 글을 쓸 예정입니다. “글로 안 써두면 영원히 안 할 것 같아서”가 첫번째 이유고요, "사전 홍보를 하려는 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저는 고2때부터 글을 썼습니다.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사춘기와 입시 스트레스가 주는 부담스러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매일 글을 썼습니다. 긴 글은 아니었고, 짧은 글을 툭툭 던졌습니다. 지금 봐도 혼돈 그 자체의 글입니다.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그 덕분에 글쓰는 습관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글을 썼던 걸까요?

 

펜시브를 보고 있는 해리포터

해리포터 시리즈에 ‘펜시브’라는 것이 나옵니다. 기억을 저장해놨다가 볼 수 있는 마법 기구죠. 덤블도어 교수는 복잡한 사건이나 고민을 마주했을 때 이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펜시브를 사용합니다. 저에게 '글은 곧 펜시브'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감정이 어떤지, 내가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수영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등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죠. 그래서 혼란스러울 때마다 제 자신과 저를 둘러싼 세계를 알기 위해 글을 썼나봅니다. 여러분은 언제 글을 쓰시나요?

 

그리고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 공감한다, 위로가 되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저 좋자고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인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019년 4월 19일의 저는 제게 도움을 주신 수많은 사람들의 파편이 모인 사람입니다. 오늘도 어떤 사람을 통해 새로운 파편을 몸에 넣겠죠. 그러면 4월 20일의 저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저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작은 파편이 되고 싶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파편이죠.

 

활주로를 꾸준히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이륙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래서 언젠가 <펜시브적 글쓰기>(가칭)라는 글쓰기 수업을 만들까 합니다. 글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글쓰기가 이른바 ‘이륙 및 순항’하기 위해서는 활주로를 꾸준히 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꾸준한 것은 쉽지 않죠. 혼자 이륙할 수 없다면 함께 활주로를 꾸준히 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 습관을 만드는 거죠. 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글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도 목표입니다.

 

'니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글을 가르치냐..' 라는 내적 울림이 큽니다. 그래서 일단 저부터 글을 꾸준히 써서 독립출판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그렇게 책을 몇 권 내면서 얻은 지식이나 노하우를 나누고 싶습니다. 가르치는 것 말고요, ‘공유'하고 싶습니다. 언제 수업을 만들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글로 안 써두면 영원히 안 할 것 같아서 반매체적 글쓰기를 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수업이 열렸을 때, 관심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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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브랜드 인턴 면접 때 팀장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신을 브랜드로 표현한다면 어떤 브랜드랑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냥 그 순간에 번쩍 생각나는 브랜드를 떠올리고, 답변을 했다.

 

TOMS의 로고

“TOMS 입니다.”

 

팀장님의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죠?”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그 질문이 오셨다. 왜? 왜죠? 왜냐? 와이? WHY? 이유가 뭐죠?

 

2.

TOMS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간단하게 TOMS에 대해 알아보자.

TOMS는 2006년에 미국의 사업가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만든 신발 및 의류 브랜드이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에,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고객이 신발을 한 켤레 구매할 때마다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한다는 One for One 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기부형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다. 초기에는 신발 위주로 상품을 구성하다가 의류, 안경, 커피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상품 카테고리는 늘어났지만, TOMS의 기본 가치관인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은 유지되었다. 안경을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안과 수술을 지원하고, 커피를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한다. 가방을 구매하면, 조산사 교육과 출산 키트를 제공하여 산모 한 명의 안전한 출산을 돕는다.

 

사실 처음에 TOMS를 좋아하게 된 건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과 브랜드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상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동아리 형이 TOMS를 신은 것을 보았다. 발에 감겨있는 듯한 디자인과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이 와닿았다. 충격을 완충하는 쿠션은 좋아보이지 않았으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신으면 달리기가 빨라질 것 같기도 하고, 날아다닐 수 있는 헤르메스의 날개신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TOMS 신발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TOMS의 비즈니스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신발을 구매하면, 신발이 필요한 어린이에게 신발을 기부한다는 점은 코끝을 찡하게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2014년에 처음으로 TOMS를 사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매년 한 켤레씩은 꼭 사는 것 같다.

 

3.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죠”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답변을 드렸다.

 

"TOMS의 주요 가치는 One for One입니다. 하나를 구매하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은 조언과 정신적, 물질적 지지를 통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것이 일이든 그 무엇이든,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임기응변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가끔 사람들이 내게 의견이나 조언을 물을 때가 있다. 책 좀 추천해 달라. 어떤 일을 좀 도와줄 수 있느냐.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주기보다는 ‘덤’을 얹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김영하 작가의 소설책 중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김영하 작가의 책 중 재밌었던 책만 추천해주는 것이 아니라, 김영하 작가와 유사한 작가의 소설책이나 김영하 작가의 다른 에세이도 추천해주는 것이다. 물론 투머치토커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곤 한다.

 

투머치토커하면 이 분...

일을 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못 찾겠으면 시키실 일이 없냐고 여쭈어보기도 했다. 덕분에 일은 원없이 했다(ㅋㅋㅋㅋ). 그 덕분에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더 잘하고 싶은데, 빈틈없이 상표 검색을 하고 싶은데, 더 번뜩이는 이름이나 스토리를 짓고 싶은데라는 욕심이 컸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컸다.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질의 성과물과 추가적인 퍼포먼스까지 내려고 하니까 탈이 날 수밖에.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 One for One의 가치는 늘 있다. 그래서 더 일을 잘하고, 내가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도 키워서 나처럼 고민 많고 생각 많은 20대 청년들을 돕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의 선배, 동기, 후배들의 많은 도움으로 오늘의 ‘나’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겸허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매일매일 나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TOMS를 보면서 해본다.

 

TOMS는 내가 닮고 싶은 브랜드다.

 

 

 

p.s)

TOMS에 대한 비판도 있다. TOMS가 기부를 하는 국가는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다. 개도국과 후진국의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1차, 2차 산업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TOMS는 신발 등의 기부를 통해 해당 국가의 2차 산업이 성장할 기회를 뺏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그 국가에서 투자를 통해 공장을 세워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TOMS가 앗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TOMS의 신발 기부가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많은 신발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TOMS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단순히, ‘그렇다면 TOMS는 불매해야겠네’라고 결정하면 되는 문제일까. 더 고민이 필요하다.

 

 



취업 시장이 열린 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간다. 꽤나 많은 자소서를 쓸 줄 알았는데, 상반기 공채는 생각보다 열리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고, 자리는 줄어든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뉴스가 매일 나온다. 불경기라서 안 열린 것이겠지라는 위로는 현재 내 상황에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취업시장에서 취준생을 가장 괴롭히는 건 자기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개인에게 찾아오는 우울한 일들이 있긴 하다. 바로 '불합격 통보’. 귀하의 성명이 명단에 없다는 말을 접하면 튼튼하던 자아라도 잠시 주춤한다. 문제는 튼튼하지 않은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회사로부터 받은 데미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넣는 순간 자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나이도 많은데, 또 백수가 되는 건가. 레드오션에 불경기에 결국 치열한 경쟁 뿐이구나. 날고 긴다는 사람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겠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단어와 문장이 줄줄이 엮어서 머리 속에 쏟아지면 취준생들은 이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는 것이었다.

회사로부터 받은 데미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넣는 순간 자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3월 말. 자소서도 어느 정도 일단락 나고 이제는 인적성의 시기가 오고 있다. 아직 어떤 기업도 서류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엄습하는 두려움이 있어서 요즘의 나는 삶이 좀 무겁다. 나이도 많고, 하고 싶은 분야는 정했지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것에서 뒤쳐진 느낌이다. 집도, 돈도, 안정감도, 소속감도 없는 그 어떤 끈도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단톡방에 좋은 와인, 뮤지컬 공연, 항공권의 초특가 할인 프로모션이 나와도 섣불리 구매할 수 없는 것이 내 현주소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꿈도 어쩌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남들처럼 사는 게 가장 힘들다는 말은 나를 다시 좌절시킨다. 걱정과 고민을 친한 사람들에게 털어놓을까 생각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기에, 그들의 삶도 충분히 힘들기에 나는 이내 말을 줄인다. 나라는 사람이 ‘힘들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라는 것도 싫었다. 다들 각자의 몫만큼의 짐을 지고 사는 것이리라.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꿈도 어쩌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그래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지.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아침 수영을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물로 도망을 간다. 어린 시절 물을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이제는 물로 도피를 하고 있다니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많지만, 힘을 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인 것 같다. 물에 뜨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없다. 그저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서 평온히 숨을 쉬면 된다. 나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은, 어쩌면 무중력과 유사한 상태. 그 안에서는 어떠한 짐을 짊어져도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불안함이 잠식하는 밤을 잊기 위해 노래를 틀거나, B cast를 틀고 잔다. 친구는 잘 때도 브랜드 관련 팟캐스트를 듣는 미친놈이라고 나를 놀렸다. 그런데 브랜드 공부를 위해서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나는 고요한 그 밤이 너무 불안해서, 소속된 곳 없이 방 한 칸만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이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없으면 너무 적막해서, 박지윤 씨의 목소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밤도 B cast를 들으면서
불안함이 잠시라도 멈추는 밤이 오길 기다린다.

“안녕하세요, B cast 청취자 여러분. 박지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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