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불합격 메일이었다. 예의를 차린 말이지만, 메시지는 서늘했다. 이 메일을 마지막으로 나의 상반기는 끝이 났다. 또 취업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나는 그때 야마모토 후미오의 <결혼하고 싶어>를 읽고 있었다. 책을 내려놓고 벽을 바라보았다. 동기부여의 말들이 가득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보내는 글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힘내. 너의 이야기를 하자.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을 꾸깃꾸깃 접어 쓰레기통에 넣고 창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가서 청소기를 가져와 바닥을 쓸었다. 오랜 기간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빨아냈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은 금방 뽀득뽀득해졌다. 차곡차곡 쌓인 먼지들이 곳곳에 엉겨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브랜딩, 배달의민족 관련된 책들을 다 책장에 꽂았다. 책등이 보이지 않도록 꽂았다. 한동안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난 1년 4개월의 시간을 톺아보았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간 시기였다. 인턴을 하면서 야근도 즐겁게 했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라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뻤다. 찾아온 기회에도 감사했고,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스펙도 올리고, 그동안 했던 활동도 잘 정리했다. 2019년 상반기는 해낼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안고 2019년 1월을 맞이했다. 하나둘씩 올라오는 채용에 도전했고, 배달의민족 신입 모집에도 도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배민 신입은 몇 년만에 열리는 기회라서 정말 귀했다. 하지만 상반기는 초반부터 좋지 않았다. 3월부터 서류는 우후죽순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대 최악의 채용 시즌이라는 취업컨설턴트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배달의민족만 서류에서 합격했다. 서류 합격 결과 메일을 보고, 펑펑 울었다. 그만큼 좋아하는 회사였고, 그 회사가 유일하게 이번 상반기에 나에게 '만나보자'라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면접은 즐거웠다. 내가 가진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 배민의 마케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케팅, 실패한 마케팅의 사례, 내가 좋아하는 것(과제)을 소개하기. 좀 신나보였을 수도 있었을텐데, 절제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답변했다. 내가 면접 자리에서는 을이지만, 나도 엄연히 회사를 면접하러 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솔직한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들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래서 떨어졌나?) 물론 그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 참 행복했다.

 

1년동안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으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노력을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영을 해냈다. 배민 덕분에 이렇게 성장했고, 고난을 겪으며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기억했다.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왔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신입으로서 뭐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되었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를 할 각오도 되었다.

 

하지만, 떨어졌다.

점을 봐준 친구도 당황했고, 내 주변 베프들도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들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근시일 내에 시작될 나의 폭주가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보낸 개인톡에 그들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의 폭주가 무서웠다. 참기 위해 혼자서 글을 써야 했다.

 

나는 퍽 억울했던 모양이다. 난생 처음으로 채용팀에 메일을 보냈다.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려주신다면, 보완해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답신이 금방 왔다. 채용의 과정은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어 사유를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결코 민경님의 역량이나 성향이 부족함이 있어서 불합격 통보를 받으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성향이 부족함이 있던 것도 아니라면 나는 대체 왜 떨어진 걸까. 한 번 더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미저리 같아서 이내 그만두었다. 답답하다.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인상 비평인가. 내 외모가 못 생겨서? 팀이랑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일을 못할 것 같아서? 멘탈이 안 좋아보여서? 그냥 이민경이란 사람이 인상이 별로여서? 면접 때 너무 나대서? 친한 선배는 '브랜드에 관한 철학, 생각은 인터브랜드 사람들 못지 않게 많다'고 위로해줬다. 이 이상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나요 선배. 나의 유용성, 쓸모 있음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내 얘기를 했는데도,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최선을 다 했는데도, 모자란 재능을 채우기 위해 노력도 했는데도,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간절히 원해도,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을 배웠다.

마음이 너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잔인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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