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소개해주세요>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 ‘신입' 채용 공고 소식을 들은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내 지인들은 아마 질릴 지경일 것이다. ‘또 배민 얘기야?’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공식적으로 채용 공고가 올라온 후,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항이...

(ㅇㅏ… ‘자유롭게’라는 말이 주는 이 막막함이란...)

막막함 앞에서 넋을 놓았지만, 내 머리는 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을 통해서 배달의민족 채용팀과 브랜딩실이, 지원자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뭘까?’
'이 지원자가 얼마나 마케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왔는지?’

일단 처음에 저 문항을 봤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당신이 궁금해요'였다.
좀 더 구체화시키면,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요’. 

아직 막연하다는 생각에 우아한형제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인재상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는 인재상, 비전 등을 가볍게 여겼다. '뭐야 어차피 스펙 보고 뽑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면접을 보면서 인재상과 비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면접에서 그 회사만 독특하게 묻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그 기저에는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 가치와 지원자를 대조해보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다.


배민의 4대 핵심가치
규율위의 자율
스타보다 팀웍
진지함과 위트
열심만큼 성과
우아한 인재상

근면성실

새시대 새일꾼

근검절약

배려와 협동



<흩어진 조각을 모아보자 - 숭 님과 장 이사님>

 배민에서 마케터로 일하시는 승희 님(이하 숭 님)의 인사이트 노트 인스타 계정과 브런치 글을 보면 숭 님의 주요한 고민을 볼 수 있다. 함께 일한다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숭 님의 인사이트 노트 인스타에서 어떤 사람이 ‘배민은 마케터가 되려면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고, 이에 대해 숭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4대 핵심가치 중 <스타보다 팀웍>이 떠오른다.

나는 또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점점 질문이 구체화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추상적인 느낌이다.


배달의민족 장인성 이사님의 <마케터의 일>을 펴본다.

1. 배달의민족을 좋아하는 사람

2. 일을 좋아하는 사람

3.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

4. 깊이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5.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여기서 장 이사님은 맨 마지막 항목인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 강조점을 두셨다. 결국 다 연결되는 것 같다. ‘스타보다 팀웍’,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브랜딩이든 무엇이든 혼자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사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해결책을 만든다. 예를 들어, 콘텐츠의 조회수는 높은데, 댓글이 달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각자 해결책을 만들 것이다. 댓글 이벤트를 해요. 썸네일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요. 참여용 콘텐츠로 개발 방향을 수정합니다. 등등. 그리고 팀에서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과정이 아닐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 관철이 아닌 설득 말이다.



팀에서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과정이 아닐까.

하지만 협업은 확실히 많은 노이즈를 동반한다. 혼자 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만 받지만, 함께 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사람에게 오는 스트레스’가 추가된다. 나도 솔직히 학교에서 조별 프로젝트보다 개인 프로젝트를 더 선호하곤 했다. 조모임 날짜를 정할 필요도 없고, 내가 기획해서 내가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가 다 지면 됐다. 이런 사실을 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 왜 그들은 협업을 강조하는 것일까?

개인 창업이나 소규모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에야 회사일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브랜드에서 풀 스콥(full scope)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전사가 그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배(ship)를 띄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서가 달려든다. SC팀(Strategy Consulting)은 바다(시장, 소비자)를 분석하고 브랜드가 항해해야할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이다. 내가 있던 VB팀(Verbal Branding)는 브랜드라는 배의 이름과 표어, 슬로건을 지어준다, 바다의 모든 사람들이 그 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BD(Brand Design)팀은 브랜드라는 배에 도색을 하고 인테리어도 하면서 모든 시각적 요소를 채워넣는다. 이로 완전한 배가 하나 완성되어 출항한다. 마지막으로 BA팀(Brand Activation)에서는, 이 배가 바다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다. 어떻게 충성스러운 동료 선원을 모집할 수 있을지, 라이벌 배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공격방법 등을 기획한다.

(엇.. 갑자기 밀짚모자 해적단의 브랜딩을 분석해보고 싶어졌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배를 띄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서가 달려든다.

이 모든 스콥을 한 명이 처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래서 협업은 필요하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팀과 회사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 안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낸다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배달의민족에서 협업을 잘한다는 것은?>

다시 장 이사님의 기준으로 돌아가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덕목(?)"을 나열해봤다.

1 — 브랜드 로열티
2 —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이유가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즐김
3 — 자기 자신이라는 인적 자원을 개발하여 전체의 발전을 유도
4 — 고객에 대한 설득 역량
5 — 다른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이를 다시 문장으로 만들어봤다.
  • (1,2) 지원하는 회사의 브랜드(배달의민족)를 좋아하며, 일에 대한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브랜드와 관련된 일 일체를 좋아하는 사람.
  • (3)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나 한계에 부딪힐 텐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과 실행을 하는 사람
  • (4) 어떤 일에 깊게 몰입하고 다른 사람을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설득력,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지닌 사람.(마케팅은 곧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마케터는 자신이 맡은 브랜드에 몰입하고 몰입의 원인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상대방의 효용으로 전환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
  • (5)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모든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과 갈등을 해결하고,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지닌 사람.

글을 잠시 멈추고, 고민했다.
배민을 떠나서, 브랜드 마케터는 어떤 사람인지 풀어서 재정의를 내려보았다.

배달의민족의 브랜드 마케터는,

1)
배민의 브랜드, 상품, 서비스에 깊게 몰입하여 그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핵심 고객 설득)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잘하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 역량을 팀에 잘 녹여서 공동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사람. (공동의 시너지)

2)
‘왜 일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구현하려는 사람.
내 브랜드와 타깃을 명백히 이해하고, 브랜드와 타깃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브랜딩을 위해 내 자신을 계발하고, 그 계발된 역량을 팀에서 시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공동의 시너지)

1), 2)를 종합해보면,

일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그 '왜'를 위해 일을 한다.
브랜드와 타깃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그 둘을 연결한다.
내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팀에 도움이 되어 시너지를 일으킨다.

흠...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참고문헌에 그저 주석을 단 수준이다.
그래도 내가 나의 언어로 정리하니까 머리에 와닿는 느낌이다.

나는 과연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한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자기성찰에 매우 좋다.(그만큼 괴롭다)

더 고민하고, 더 생각해서 글로 옮겨봐야겠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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