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딴 건 2012년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할 게 없어서 시간이 있을 때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 상 운전면허 기능시험, 도로주행이 가장 쉬었던 때였다. 정지할 때 클러치를 잘못 밟아 차가 앞뒤로 덜컹했는데, 그럼에도 난 합격했다. 그때 난 결심했다. 운전을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9년, 그래도 운전을 할 줄 알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내가 핸들을 잡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여행을 갔을 때 운전을 하면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다. 개인에게 받는 교습이 저렴하다고 들었다. 나는 학원과 개인교습을 놓고 저울질을 하면서 우물쭈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꼴을 보시던 어머님께서는, 또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나 흘려보내고 평생 장롱면허로 남겠다고 혀를 끌끌 차셨다. 나의 오기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비꼬는 방법이 제일이다. 나는 그 다음날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7년 전 배운 모든 것이 기억날 리 만무하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하니까 말 다했지. 장내 기능을 공부하는 사람처럼 클러치 조작부터 기어 변속, 액셀, 브레이크에 대해 배웠다. 처음 한 시간은 기능 코스에서 천천히 주행했다. 차는 감기에 걸린 사람마냥 쿨럭쿨럭 거리면서 탈탈탈 굴러갔다. 시동도 종종 꺼지고, 핸들링이 투박해서 차체도 휘청거리고 불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대로는 도로에 못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대충 장내에서 차가 굴러다닐 무렵, 선생님은 도로에 나가자고 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나가요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여기 면허따러 온 거 아니잖아요. 왜 비싼 돈 들여서 등록했는지 생각해보세요. 면허 합격 스킬이 아니라 진짜 운전을 배워야죠.”
뭔 소리람. 쨌든 도로에 나가서 낑낑 거리면서 운전 연습을 계속 했다. 자유로를 타면서 속력을 끌어올리고 차선도 바꾸고, 일반 도로에서 유턴, 좌회전, 우회전을 연습했다. 그리고 마지막 연수날, 도로를 (선생님의 잔소리 한 바가지와 함께) 나름 수월하게 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운전 연수를 받는 것이면, 시험 통과가 목적이 아니라, 운전 실력 향상에 목적을 두고 연수를 받으라는 뜻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는 비단 운전연수뿐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배울 때 적용해야하는 점이었다.
뭔가를 배울 때, 나의 동기/목적은 간단할 때도 있지만, 보통 ‘유용성'을 내세울 때가 많다. ‘훗날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을/를 더 잘하고 싶어서’. 이런 동기는 나로 하여금 배움의 초입까지 수월하게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는 좋은 동기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이 동기를 금방 잊거나, 동기를 이루게 하는 보조적인 것들에 매몰된다는 점이었다.
운전을 배운다고 가정해보자. 운전연수를 받는 이유는 실제 도로에서 운전을 잘하기 위함이다.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숙달시키는 것이다. 이 기술을 숙달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자동차 조작법을 배우고, 장내 기능코스에서 연습을 하고, 도로에서 다른 차들과 부대끼면서 실습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은 ‘숙련된 운전실력’을 배양하기 위한 과정 자체일 뿐인데, 나는 그것을 망각한 것이다. 즉, 배움 자체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론을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배움과 과정 자체에 매몰되곤 하는 것이다. 과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점이 배움의 과정에서 나를 지치게 하는 치명타였던 것 같다. 이론이나 기술 습득 자체에만 몰두해서, 머리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 습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ppt로 장표를 만든다거나, 어떤 툴(tool)을 사용해서 영상, 디자인 작업 등을 하는 것은 머리로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나가려고 하는 세상은 그런 일들이 주가 되는 세상이다. 머리에 든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이다. 머리 속에 든 걸 아무리 말로 주장해봤자, 남들에게는 ‘너네 집에 있는 황금 송아지’일 뿐이다. 결국 그 이론, 지식, 기술을 가지고 어떤 응용을 할 수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곳이 곧 사회인 것 같다.
코딩을 배울 때도, 코드 그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일정 수준에 오르면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는 게 좋겠다. 데이터 분석 툴을 배울 때도, 수업시간에 배운 것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 다음 단계에서 내가 어떻게 분석을 할 것이고,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어떤 것이 가능한지 다각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래도 배움의 시작에는 자의든 타의든 나름 추진력을 잘 얻는 편이니까 시작이 반이라는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배움의 순간에, 내가 이것을 배워서 어디에 활용할지 이따금씩 상상해보는 것은 중간 추진력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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