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보통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주를 보는 순간은 흥미롭지만, 사주 결과에 내가 너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보면 사주를 믿는 자가 하는 행동의 한 갈래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는 '머리와 마음의 괴리'라고 표현한다. 머리로는 안 믿어, 안 믿어, 안 믿어라고 외치지만, 마음은 그래도 혹시나, 그래도 혹시나, 그래도 혹시나 라면서 상호배반의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화 역시 나의 감정의 낭비를 발생시키므로 나는 사주팔자풀이 근처에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퍽 잘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년월일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의 동의 없이 - 사실 사주를 보는데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 나에 관한 사주를 보았다면 나는 이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작년 이맘때쯤, 어머니께서 외사촌누나의 결혼식을 다녀오셨다. 간만에 만난 이모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셨으리라 짐작된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이 불효자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이 있는 법. 이모께서는 부산의 용한 점쟁이의 존재를 어필하시면서, 그에게 이 불효자의 미래를 살짝 엿보자는 달콤한 제안을 건네셨겠지. 그리고 그 사주풀이는 꽤나 솔깃한 것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행정고시 보는 게 어떻겠냐"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의 뜬금없었던 질문 하나를 통해, 나는 이번 사주풀이가 어머님의 마음에 매우 흡족했던 말이라 짐작했다. 나는 왜 그러시느냐 물었고, "너 사주 팔자에 관운이 있대. 고시나 시험을 보면 잘 풀린다는 거야"라고 어머님은 답하셨다. 당시 나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의 말씀을 드렸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밌고 잘 맞아요. 하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여름...

나는 요즘 문득, 내가 어쩌면 사주에 반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고시, 시험, 안정성이 내 사주를 대표하는 키워드(?)인데, 마케팅, 변수, 트렌드 등의 키워드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삶을 지향해서 이 사단(?)이 난 것이 아닐까? 이쯤이면 할만큼 한 것 같고, 업무에 대한 관심도 있고, 일을 열심히 할 태도도 갖췄고, 능력도 모자라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매번 고배를 마시니 이쯤되면 이것은 알 수 없는 모종의 절대적인 힘이 나를 고난으로 쳐박아버렸다는 해석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계속 그 업계로 자기소개서를 들이민다고? 실컷 해보셩~"이라며 큭큭대는 '모종의 절대적인 힘'을 상상하니 약이 오른다. 사주팔자대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기질대로 살아간다는 뜻일텐데, 나는 내 기질에 반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결국 기질이 제대로 발현이 안 되니, 남은 건 스트레스뿐. 기질에 반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나의 몫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몫이다. 기질에 반하는 나의 선택이 나와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한 번 더 나를 괴롭게 한다.

그렇다고,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공직에는 원래 뜻이 없었다. 지금 내 인생에서 고시에 도전할 타이밍은 이미 놓친 것 같다. 만약, 사주에 반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의 프로세스가 계속 되는 것이라면, 그런데 이미 그 흐름을 틀어버릴 타이밍을 놓쳤다면, 나의 남은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면 뭐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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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중에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나는 이 질문에 '안전거리'라고 답했다. 안전거리. 안전을 위한 거리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안전한 거리이다.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관계가 가장 어렵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재밌어 해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훅 들어가거나, 해석에 따라 선을 넘는 발언들을 할 때가 있다. 명백히 내가 잘못한 상황을 인지하는 동시에, 타인의 질책이 더해지면, 나는 그 순간 자아비판을 시작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역시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풀이 죽어버린 나는 그 뒤로 한동안은 어느 집단에서나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을 택한다.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집단의 외곽으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밀려남의 끝에는 절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초조해지거나 체념하게 된다. 철없는 생각이 든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해줬으면.' 이 생각은 너무 수동적이라는 생각에 미쳐, 능동적으로 나도 말을 던져본다. 하지만 뭔가 엇나가는 느낌이다. 미끄덩미끄덩한 말의 감촉이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 허공에서 사라진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전해주면서 관계 안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든 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내 진심을 열어보였던 집단에서는 부담스러움을 받았고, 그 아픔 때문에 마음을 잠시 닫았던 집단에서는 미끄러졌다.

안전거리를 좀 줄여야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 적당한 수치를 알지 못한다. 
일단 안전해야 하기에 나는 그 수치를 넉넉하게 잡고,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아직까지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본질은 '안전거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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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르바이트를 가는 회사에서도 채용이 한창이다.

“정규직 전환 대상은 다 골랐고요, 한 명은 안 뽑으려고요.”
“네, 알겠습니다.”

채용 연계형 인턴이었나보다.
그냥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도 힘들텐데
일은 일대로 하고 인턴 후에 떨어지면 얼마나 속상할까.

구직자에게는 절실한 매 순간이, 실무자에게는 일년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루틴한 순간이라는 사실. 그 접점에서 조만간 어떤 한 사람은 고배를 마실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시길.

P.S) 그래도 공대니까 곧 취업하실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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