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시장이 열린 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간다. 꽤나 많은 자소서를 쓸 줄 알았는데, 상반기 공채는 생각보다 열리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고, 자리는 줄어든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뉴스가 매일 나온다. 불경기라서 안 열린 것이겠지라는 위로는 현재 내 상황에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취업시장에서 취준생을 가장 괴롭히는 건 자기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개인에게 찾아오는 우울한 일들이 있긴 하다. 바로 '불합격 통보’. 귀하의 성명이 명단에 없다는 말을 접하면 튼튼하던 자아라도 잠시 주춤한다. 문제는 튼튼하지 않은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회사로부터 받은 데미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넣는 순간 자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나이도 많은데, 또 백수가 되는 건가. 레드오션에 불경기에 결국 치열한 경쟁 뿐이구나. 날고 긴다는 사람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겠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단어와 문장이 줄줄이 엮어서 머리 속에 쏟아지면 취준생들은 이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는 것이었다.

회사로부터 받은 데미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넣는 순간 자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3월 말. 자소서도 어느 정도 일단락 나고 이제는 인적성의 시기가 오고 있다. 아직 어떤 기업도 서류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엄습하는 두려움이 있어서 요즘의 나는 삶이 좀 무겁다. 나이도 많고, 하고 싶은 분야는 정했지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것에서 뒤쳐진 느낌이다. 집도, 돈도, 안정감도, 소속감도 없는 그 어떤 끈도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단톡방에 좋은 와인, 뮤지컬 공연, 항공권의 초특가 할인 프로모션이 나와도 섣불리 구매할 수 없는 것이 내 현주소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꿈도 어쩌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남들처럼 사는 게 가장 힘들다는 말은 나를 다시 좌절시킨다. 걱정과 고민을 친한 사람들에게 털어놓을까 생각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기에, 그들의 삶도 충분히 힘들기에 나는 이내 말을 줄인다. 나라는 사람이 ‘힘들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라는 것도 싫었다. 다들 각자의 몫만큼의 짐을 지고 사는 것이리라.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꿈도 어쩌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그래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지.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아침 수영을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물로 도망을 간다. 어린 시절 물을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이제는 물로 도피를 하고 있다니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많지만, 힘을 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인 것 같다. 물에 뜨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없다. 그저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서 평온히 숨을 쉬면 된다. 나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은, 어쩌면 무중력과 유사한 상태. 그 안에서는 어떠한 짐을 짊어져도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불안함이 잠식하는 밤을 잊기 위해 노래를 틀거나, B cast를 틀고 잔다. 친구는 잘 때도 브랜드 관련 팟캐스트를 듣는 미친놈이라고 나를 놀렸다. 그런데 브랜드 공부를 위해서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나는 고요한 그 밤이 너무 불안해서, 소속된 곳 없이 방 한 칸만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이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없으면 너무 적막해서, 박지윤 씨의 목소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밤도 B cast를 들으면서
불안함이 잠시라도 멈추는 밤이 오길 기다린다.

“안녕하세요, B cast 청취자 여러분. 박지윤입니다. ..."


<‘자유롭게’ 소개해주세요>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 ‘신입' 채용 공고 소식을 들은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내 지인들은 아마 질릴 지경일 것이다. ‘또 배민 얘기야?’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공식적으로 채용 공고가 올라온 후,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항이...

(ㅇㅏ… ‘자유롭게’라는 말이 주는 이 막막함이란...)

막막함 앞에서 넋을 놓았지만, 내 머리는 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을 통해서 배달의민족 채용팀과 브랜딩실이, 지원자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뭘까?’
'이 지원자가 얼마나 마케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왔는지?’

일단 처음에 저 문항을 봤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당신이 궁금해요'였다.
좀 더 구체화시키면,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요’. 

아직 막연하다는 생각에 우아한형제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인재상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는 인재상, 비전 등을 가볍게 여겼다. '뭐야 어차피 스펙 보고 뽑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면접을 보면서 인재상과 비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면접에서 그 회사만 독특하게 묻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그 기저에는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 가치와 지원자를 대조해보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다.


배민의 4대 핵심가치
규율위의 자율
스타보다 팀웍
진지함과 위트
열심만큼 성과
우아한 인재상

근면성실

새시대 새일꾼

근검절약

배려와 협동



<흩어진 조각을 모아보자 - 숭 님과 장 이사님>

 배민에서 마케터로 일하시는 승희 님(이하 숭 님)의 인사이트 노트 인스타 계정과 브런치 글을 보면 숭 님의 주요한 고민을 볼 수 있다. 함께 일한다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숭 님의 인사이트 노트 인스타에서 어떤 사람이 ‘배민은 마케터가 되려면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고, 이에 대해 숭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4대 핵심가치 중 <스타보다 팀웍>이 떠오른다.

나는 또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점점 질문이 구체화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추상적인 느낌이다.


배달의민족 장인성 이사님의 <마케터의 일>을 펴본다.

1. 배달의민족을 좋아하는 사람

2. 일을 좋아하는 사람

3.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

4. 깊이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5.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여기서 장 이사님은 맨 마지막 항목인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 강조점을 두셨다. 결국 다 연결되는 것 같다. ‘스타보다 팀웍’,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브랜딩이든 무엇이든 혼자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사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해결책을 만든다. 예를 들어, 콘텐츠의 조회수는 높은데, 댓글이 달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각자 해결책을 만들 것이다. 댓글 이벤트를 해요. 썸네일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요. 참여용 콘텐츠로 개발 방향을 수정합니다. 등등. 그리고 팀에서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과정이 아닐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 관철이 아닌 설득 말이다.



팀에서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과정이 아닐까.

하지만 협업은 확실히 많은 노이즈를 동반한다. 혼자 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만 받지만, 함께 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사람에게 오는 스트레스’가 추가된다. 나도 솔직히 학교에서 조별 프로젝트보다 개인 프로젝트를 더 선호하곤 했다. 조모임 날짜를 정할 필요도 없고, 내가 기획해서 내가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가 다 지면 됐다. 이런 사실을 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 왜 그들은 협업을 강조하는 것일까?

개인 창업이나 소규모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에야 회사일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브랜드에서 풀 스콥(full scope)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전사가 그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배(ship)를 띄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서가 달려든다. SC팀(Strategy Consulting)은 바다(시장, 소비자)를 분석하고 브랜드가 항해해야할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이다. 내가 있던 VB팀(Verbal Branding)는 브랜드라는 배의 이름과 표어, 슬로건을 지어준다, 바다의 모든 사람들이 그 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BD(Brand Design)팀은 브랜드라는 배에 도색을 하고 인테리어도 하면서 모든 시각적 요소를 채워넣는다. 이로 완전한 배가 하나 완성되어 출항한다. 마지막으로 BA팀(Brand Activation)에서는, 이 배가 바다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다. 어떻게 충성스러운 동료 선원을 모집할 수 있을지, 라이벌 배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공격방법 등을 기획한다.

(엇.. 갑자기 밀짚모자 해적단의 브랜딩을 분석해보고 싶어졌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배를 띄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서가 달려든다.

이 모든 스콥을 한 명이 처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래서 협업은 필요하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팀과 회사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 안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낸다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배달의민족에서 협업을 잘한다는 것은?>

다시 장 이사님의 기준으로 돌아가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덕목(?)"을 나열해봤다.

1 — 브랜드 로열티
2 —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이유가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즐김
3 — 자기 자신이라는 인적 자원을 개발하여 전체의 발전을 유도
4 — 고객에 대한 설득 역량
5 — 다른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이를 다시 문장으로 만들어봤다.
  • (1,2) 지원하는 회사의 브랜드(배달의민족)를 좋아하며, 일에 대한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브랜드와 관련된 일 일체를 좋아하는 사람.
  • (3)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나 한계에 부딪힐 텐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과 실행을 하는 사람
  • (4) 어떤 일에 깊게 몰입하고 다른 사람을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설득력,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지닌 사람.(마케팅은 곧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마케터는 자신이 맡은 브랜드에 몰입하고 몰입의 원인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상대방의 효용으로 전환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
  • (5)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모든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과 갈등을 해결하고,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지닌 사람.

글을 잠시 멈추고, 고민했다.
배민을 떠나서, 브랜드 마케터는 어떤 사람인지 풀어서 재정의를 내려보았다.

배달의민족의 브랜드 마케터는,

1)
배민의 브랜드, 상품, 서비스에 깊게 몰입하여 그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핵심 고객 설득)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잘하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 역량을 팀에 잘 녹여서 공동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사람. (공동의 시너지)

2)
‘왜 일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구현하려는 사람.
내 브랜드와 타깃을 명백히 이해하고, 브랜드와 타깃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브랜딩을 위해 내 자신을 계발하고, 그 계발된 역량을 팀에서 시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공동의 시너지)

1), 2)를 종합해보면,

일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그 '왜'를 위해 일을 한다.
브랜드와 타깃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그 둘을 연결한다.
내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팀에 도움이 되어 시너지를 일으킨다.

흠...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참고문헌에 그저 주석을 단 수준이다.
그래도 내가 나의 언어로 정리하니까 머리에 와닿는 느낌이다.

나는 과연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한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자기성찰에 매우 좋다.(그만큼 괴롭다)

더 고민하고, 더 생각해서 글로 옮겨봐야겠다.

-끗- 


1.

슬램덩크의 유명한 장면이 있다.

방황하던 정대만이 안 선생님 앞에서 피범벅이 된 얼굴로

농구에 대한 진심을 토로하던 순간.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오늘 친구와 얘기하다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 정말 일을 하고 싶구나."


요즘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키워드는

'마케팅, 브랜딩, 데이터, 분석력, 인사이트' 등이다.

지인들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위의 키워드가 등장하면

나는 이내 신이 나서 각 키워드에 대한 나의 생각, 방향성을 늘어놓는다.

투머치 토커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 데이터가 정말 화두지. 모든 사람의 행동이 데이터로 축적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행동 원인을 알아야 하는 마케터는 데이터를 읽을 줄 알아야 해.

하지만 한편으로 데이터에 너무 매몰되어서, 분석론에 대한 현학적 고찰이라든지 데이터 숫자 자체에 빠져서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못 본다는지 하면 안 돼.

데이터가 좋으면 차라리 마케터 보다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는...블라블라블라블라(후략)'


[이 말이 끝나고, 친구가 '너 정말 일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말을 건넸다.]



2.



브랜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년 전 매거진B를 처음 접하면서부터이다.

SIBF(서울 국제 북 페스티벌)에서 매거진B MUJI편을 샀다. 지인들은 내가 매거진B를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읽어보니,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짜임새있는 구성이 좋았다.

하나의 브랜드를 이렇게 낱낱이 파헤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편집장을 비롯한 수많은 에디터의 꼼꼼함도 엿보였다.


(배짱이 3기 환영회의 컨셉은 학교였다. 그래서 배민스쿨)


배달의민족 팬클럽인 "배짱이" 활동은 브랜딩에 대한 관심에 기폭제가 되었다.

단순히 자기 회사의 브랜드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댓글과 좋아요로 소통하는 단계를 넘어가

팬이 자생하여 프로모션 행위를 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

내가 경험했던 배달의민족이었다.

배민은 팬들에게 뭔가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놀고, 웃고, 떠들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무위의 위, 행함이 없는 행함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나는 브랜딩, 마케팅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읽은 것은 아님)

트레바리 마케팅반에 등록해서 토론도 해보고,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님, 장인성 CBO님의 북토크에도 참여했다.

세바시 강연을 들으면서 마케팅 공부를 하기도 했고,

데이터 분석 기초를 쌓기 위해 python과 pandas, matplotlib도 공부했다.

(써놓고 보니 꽤나 많이 했네..)

그리고 인터브랜드에서 인턴을 하면서 브랜딩 실무를 익혔다.


(행복한 것 맞습니다... 퇴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인터브랜드에서 인턴할 때 내가 행복해보였다고 말한다.

실무는 강연과 책과 많이 달랐다.

물론 강연이나 책에 있는 내용들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활자나 음성으로 듣는 것보다 실무에 몸을 던지고 읽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자료를 찾고

컨셉에 따라 후보안을 백 개씩 만들고

그 후보안에 대한 브랜드 스토리, 태그라인 등을 구상하고

서베이 및 evaluation 자료를 정리하는 등

책보다 더 생생하고 와닿는 실무가 많았다.

나는 그 현장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적용하고, 좌절하는, 때로는 성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이 좋았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행복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인턴 생활을 전후로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3.

그래서,

나는 단순히 취업을 하는 마음을 넘어서

일을 하고 싶다.

일을 해서 더 성장하고 싶다.

실무가 없이 책과 강연으로 성장하는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공부는 끝이 없고, 개인의 성장에도 끝이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실제 필드의 일을 배워야 한다.

실무를 배우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고 싶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책 <왜 일하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p.18


얼마 전 자소서를 쓰면서 나의 주요한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도전과 성장'이라고 키워드를 잡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런 나의 간절한 마음이 일과 나를 이어주는 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은 지난한 것이겠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배울 점이 있다고 믿는다.

취업이 인생의 답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보자. 이곳은 교무실이다. 당신(혹은 나)은 수능을 앞두고 진로 상담을 하고 있다. 선생님 저는 가고 싶은 과가 딱히 없어요. 당신의 말에 선생님이 답한다. 일단 그건 대학에 가서 고민하자. 우선, 대학에 가야지.

대학에 가면 인생이 해결될 줄 알았다. 정말이다. 우리의 정규 교육 과정 12년을 돌아보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을 차근차근 밟았다. 12년의 매순간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나는 그것이 감히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유행한 드라마 <스카이캐슬>도 그런 것 아닌가. 대학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를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건대, 당시 나에게 ‘대학’이라는 존재는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강하게 와닿기 시작했다. 내신과 수능 1점에 따라 대학이 좌우되며, 대학에 의해 인생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지금 가진 고민들이 좋은 대학, 좋은 과에 가면 다 해결이 될 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아니었다. 대학은 인생의 답이 아니었고, 새로운 문제였다. 문제는 문제였는데,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들이었다. 고등학교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나 평가원이 출제한 문제를 내가 푸는 방식이었다면, 대학에서는 문제도 내가 내고, 답도 내가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더 작은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문제의 가지수는 무한정 증가했다. 매순간이 문제였고, 그걸 풀어나가야 했다. 외계인이 이 광경을 지구 상공에서 봤으면 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쟤네는 왜 지들이 문제를 내고 지들이 괴로워 하냐”

물론 대학이라는 이름이 일정 부분 담보해주는 것은 있지만, 점점 그런 부분은 옅어져가고 있다. 교수님들은 종종 당신들께서 사셨던 호시절을 말씀해주시곤 했다. “도서관 앞에 관광버스가 와있는데, 삼성, 현대, 대우 팻말이 붙어있는 거야. 그냥 아무거나 골라 타면 합격이었어”(아 부럽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각자 자기 이름이 적힌 팻말(수험표)을 붙이고, 기업 앞에서 자신을 알린다. 기업의 선택을 받으면 입사하는 것이다. 상황의 역전이다. 그나마도 이제 대학 이름을 뛰어 넘어, '실무, 직무 중심의 채용' 분위기로 바뀌었으니, 학교 이름만 좋다고 취업하는 시기는 완전히 종말을 고한 것이다. 대학은 답이 아니었다.

내 목전에는 ‘취업’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놓여 있다. 직업을 취해, 노동력을 팔아 자본을 생산하는 일. 취준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석방날짜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만든다. 부푼 기대감과 함께 취업 후의 낭만을 그린다. 해외여행 가기, 취미 만들기, 요가 다니기, 외국어 공부하기, 옷 잔뜩 사기 등등. 이 모든 희망사항 앞에는 가정문 하나가 붙는다. [취업만 된다면]. 나도 ‘취업만 된다면’ 가정법을 머리 속에 종종 펼치곤 한다. 취업이라는 답이 주는 희망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취준생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취준생에게 취업은 곧 답이다. 취업만 해결하면 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 신입생 때로 돌아가보자. 기대했던 대학의 모습과 내가 경험하던 대학의 모습이 얼마나 같았는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멋진 수식어가 있던 자리에는 학점의 상아탑이 있었고, 벽돌 하나에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았던 학교에는 회의감만 감돌았다. 대학은 답이 아니었다. 과연 회사라고 안 그럴까.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면 회사도 비슷할 것이다. 취업을 했다고 해서, 인생의 대로가 열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기대와 다를 것이며, 새로운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로부터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라고 한다. 대학이 곧 정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취업도 정답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취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 마스터키 같은 기능을 기대하지는 말자. 오히려 대학 때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내게 던져야 하고, 그 수많은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나서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대학 때보다 더 치열했으면 치열했지, 덜 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은 우리가 배우러 가는 곳이지만, 회사는 일을 배우는 동시에, 일을 통해 자신의 배움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에 절대적인 정답이란 것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스터키 같은 답은 없고, 인생의 각 시기마다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놓고 보더라도, ‘노후'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취업도 궁극의 정답이 아닐 것이다. 취업을 하면, 다음 문제가 내게 다가오겠지. 경계할 것은, 대학 새내기때처럼 현실에 안주해 나태해지는 태도다. 끊임없이 묻고, 이해해서 일을 배우자. 한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를 계발하자.

일단, 취업을 하자.

단순히 어디든 들어가야지라는 마음보다는, 내가 희망하는 길을 바탕으로 정하는 현명함을 갖고 취업할 수 있기를.


Brand Image와 Personal Branding

어떤 브랜드를 접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공통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브랜드 이미지다. ‘애플’하면 ‘디자인과 혁신’, ‘볼보’하면 ‘안전성’, ‘배달의민족’하면 ‘B급 유머’ 등이 브랜드 이미지가 잘 정립된 브랜드의 예이다. 브랜드 이미지는 곧 기업의 이미지와 동일시 되며, 기업이 생산한 상품 및 서비스의 이미지까지 연결이 된다. 그만큼 연결성이 강력하다.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상품, 서비스를 넘어 그 기업의 존망을 좌지우지하니 그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세 가지 예는 시장에서 이미지를 잘 형성한 긍정적인 예시들인데, 반대로 부정적인 예들도 찾으면 많다. (ex. N모 낙농업체를 보면 떠오르는 ‘갑질’, ‘불매’ 이미지)

과연 브랜드 이미지가 기업에만 국한된 얘기일까. 바야흐로 personal branding의 시대이다. 1세대 소셜 미디어인 ‘싸이월드’의 시대는 이미 저문 지 오래고, 자신을 표현하는 미디어와 수단이 무궁무진한 세상이 되었다. 유투버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고, 영상 편집을 배워서 영상 기록(Vlog)를 남기는 사람들도 많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전세계에 노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자기 표현의 범람 흐름과 맞물려 personal branding의 중요성도 자연스럽게 강조되었다.

나라는 Brand Image


지난 2주일 동안 비슷한 성질의 경험을 두 번 했다. 두 개의 일화를 대화문으로 간단하게 요약해보겠다.
일단, A와 B를 비난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혀 둔다. 그리고 아래의 대화는 매우 축약된 대화임을 감안하자.

첫 번째 일화)
나 : 요즘 잘 지내? 한 번 만나자.
A : 그래그래. 근데 미안한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 지금 내가 너의 얘기를 들어줄 여력이 없다.
나 : 아 나 무슨 일 있어서 만나자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한 연락이 아니라, 오랜만에 보자고 한 연락이야.
A : 그랬구나. 미안하다.

두 번째 일화)
...(앞선 대화 생략)...
나 : 곧 상반기 공채라 좀 초조해지네.
B : 힘내힘내.
나 : 고마워. 정말 지긋지긋하구만.
B : 그렇지 아무래도.
…(중략)…
B : 작년에 많이 응원해줬으니까, 올해는 좀 쉴게. 요즘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객관적으로 내가 봐도 정말 힘든 상태임)
나 : 아 그래그래.

내가 위의 두 일화를 겪고 깨달은 것은, ‘나’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으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연락과 나와의 담화 내에는 ‘우울, 걱정, 힘듦’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애플’을 생각하면 ‘디자인과 혁신’을 떠올리듯, 나를 생각하면, ‘우울, 무거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예감’ 등을 떠올리는 것이다. 브랜딩 관점에서 보면 나의 브랜딩은 처참한 실패라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일단 나는 사람들과 진지한 얘기를 많이 하던 사람이었다. 어떤 시간을 보내든 의미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함께 생각하며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내 얘기도 공유하면서 함께 얘기해보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이따금 기분이 좋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소위 ‘우울한 글’을 많이 써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나의 행동들 - 말과 글 - 이 지금의 나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것 같다. 후회가 된다.

굳이 변명을 하나 하자면, 나도 성장을 하는 중이라, 치기어린 시절처럼 굴 파는(?) 글을 예전만큼 쓰지 않는다. 그리고 매년 점점 더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내면을 관리하는 나만의 노하우도 터득하고 있다.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고, 브랜딩 등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따금씩 일상 속에서 깊게 생각해볼 것, 다른 사람도 공감할만한 소재를 찾으면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는 정도였다.

인식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해 알 수 있다. 사실 브랜드 이미지가 무서운 것은 그 이미지가 브랜드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도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도 있다. 즉, 현재 사람들이 내게 가지고 있는 ‘우울, 무거움, 진지충’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기 매우 어렵다. 실제로 내가 요즘 매우 잘 지내고 있다는 포스팅을 아무리 올려도, 위의 일화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 미디어의 본질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사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타인과 소통하는 매체에 맞는 콘텐츠를 올려야겠다. 사교적 목적에 맞는 콘텐츠를 올릴 생각이다. 일상의 (긍정적인 것에 가까운) 기록에 충실한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다보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여기서 또 브랜딩의 주요한 포인트를 깨닫는다. 바로 “꾸준함”) 밝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라는 강박은 가지지 않기로 한다. 다만, 소소한 기록용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활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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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를 딴 건 2012년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할 게 없어서 시간이 있을 때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 상 운전면허 기능시험, 도로주행이 가장 쉬었던 때였다. 정지할 때 클러치를 잘못 밟아 차가 앞뒤로 덜컹했는데, 그럼에도 난 합격했다. 그때 난 결심했다. 운전을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9년, 그래도 운전을 할 줄 알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내가 핸들을 잡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여행을 갔을 때 운전을 하면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다. 개인에게 받는 교습이 저렴하다고 들었다. 나는 학원과 개인교습을 놓고 저울질을 하면서 우물쭈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꼴을 보시던 어머님께서는, 또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나 흘려보내고 평생 장롱면허로 남겠다고 혀를 끌끌 차셨다. 나의 오기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비꼬는 방법이 제일이다. 나는 그 다음날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7년 전 배운 모든 것이 기억날 리 만무하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하니까 말 다했지. 장내 기능을 공부하는 사람처럼 클러치 조작부터 기어 변속, 액셀, 브레이크에 대해 배웠다. 처음 한 시간은 기능 코스에서 천천히 주행했다. 차는 감기에 걸린 사람마냥 쿨럭쿨럭 거리면서 탈탈탈 굴러갔다. 시동도 종종 꺼지고, 핸들링이 투박해서 차체도 휘청거리고 불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대로는 도로에 못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대충 장내에서 차가 굴러다닐 무렵, 선생님은 도로에 나가자고 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나가요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여기 면허따러 온 거 아니잖아요. 왜 비싼 돈 들여서 등록했는지 생각해보세요. 면허 합격 스킬이 아니라 진짜 운전을 배워야죠.”


뭔 소리람. 쨌든 도로에 나가서 낑낑 거리면서 운전 연습을 계속 했다. 자유로를 타면서 속력을 끌어올리고 차선도 바꾸고, 일반 도로에서 유턴, 좌회전, 우회전을 연습했다. 그리고 마지막 연수날, 도로를 (선생님의 잔소리 한 바가지와 함께) 나름 수월하게 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운전 연수를 받는 것이면, 시험 통과가 목적이 아니라, 운전 실력 향상에 목적을 두고 연수를 받으라는 뜻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는 비단 운전연수뿐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배울 때 적용해야하는 점이었다.

뭔가를 배울 때, 나의 동기/목적은 간단할 때도 있지만, 보통 ‘유용성'을 내세울 때가 많다. ‘훗날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을/를 더 잘하고 싶어서’. 이런 동기는 나로 하여금 배움의 초입까지 수월하게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는 좋은 동기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이 동기를 금방 잊거나, 동기를 이루게 하는 보조적인 것들에 매몰된다는 점이었다. 

운전을 배운다고 가정해보자. 운전연수를 받는 이유는 실제 도로에서 운전을 잘하기 위함이다.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숙달시키는 것이다. 이 기술을 숙달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자동차 조작법을 배우고, 장내 기능코스에서 연습을 하고, 도로에서 다른 차들과 부대끼면서 실습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은 ‘숙련된 운전실력’을 배양하기 위한 과정 자체일 뿐인데, 나는 그것을 망각한 것이다. 즉, 배움 자체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론을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배움과 과정 자체에 매몰되곤 하는 것이다. 과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점이 배움의 과정에서 나를 지치게 하는 치명타였던 것 같다. 이론이나 기술 습득 자체에만 몰두해서, 머리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 습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ppt로 장표를 만든다거나, 어떤 툴(tool)을 사용해서 영상, 디자인 작업 등을 하는 것은 머리로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나가려고 하는 세상은 그런 일들이 주가 되는 세상이다. 머리에 든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이다. 머리 속에 든 걸 아무리 말로 주장해봤자, 남들에게는 ‘너네 집에 있는 황금 송아지’일 뿐이다. 결국 그 이론, 지식, 기술을 가지고 어떤 응용을 할 수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곳이 곧 사회인 것 같다.

코딩을 배울 때도, 코드 그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일정 수준에 오르면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는 게 좋겠다. 데이터 분석 툴을 배울 때도, 수업시간에 배운 것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 다음 단계에서 내가 어떻게 분석을 할 것이고,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어떤 것이 가능한지 다각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래도 배움의 시작에는 자의든 타의든 나름 추진력을 잘 얻는 편이니까 시작이 반이라는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배움의 순간에, 내가 이것을 배워서 어디에 활용할지 이따금씩 상상해보는 것은 중간 추진력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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