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램덩크의 유명한 장면이 있다.
방황하던 정대만이 안 선생님 앞에서 피범벅이 된 얼굴로
농구에 대한 진심을 토로하던 순간.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오늘 친구와 얘기하다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 정말 일을 하고 싶구나."
요즘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키워드는
'마케팅, 브랜딩, 데이터, 분석력, 인사이트' 등이다.
지인들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위의 키워드가 등장하면
나는 이내 신이 나서 각 키워드에 대한 나의 생각, 방향성을 늘어놓는다.
투머치 토커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 데이터가 정말 화두지. 모든 사람의 행동이 데이터로 축적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행동 원인을 알아야 하는 마케터는 데이터를 읽을 줄 알아야 해.
하지만 한편으로 데이터에 너무 매몰되어서, 분석론에 대한 현학적 고찰이라든지 데이터 숫자 자체에 빠져서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못 본다는지 하면 안 돼.
데이터가 좋으면 차라리 마케터 보다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는...블라블라블라블라(후략)'
[이 말이 끝나고, 친구가 '너 정말 일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말을 건넸다.]
2.

브랜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년 전 매거진B를 처음 접하면서부터이다.
SIBF(서울 국제 북 페스티벌)에서 매거진B MUJI편을 샀다. 지인들은 내가 매거진B를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읽어보니,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짜임새있는 구성이 좋았다.
하나의 브랜드를 이렇게 낱낱이 파헤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편집장을 비롯한 수많은 에디터의 꼼꼼함도 엿보였다.

(배짱이 3기 환영회의 컨셉은 학교였다. 그래서 배민스쿨)
배달의민족 팬클럽인 "배짱이" 활동은 브랜딩에 대한 관심에 기폭제가 되었다.
단순히 자기 회사의 브랜드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댓글과 좋아요로 소통하는 단계를 넘어가
팬이 자생하여 프로모션 행위를 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
내가 경험했던 배달의민족이었다.
배민은 팬들에게 뭔가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놀고, 웃고, 떠들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무위의 위, 행함이 없는 행함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나는 브랜딩, 마케팅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읽은 것은 아님)
트레바리 마케팅반에 등록해서 토론도 해보고,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님, 장인성 CBO님의 북토크에도 참여했다.
세바시 강연을 들으면서 마케팅 공부를 하기도 했고,
데이터 분석 기초를 쌓기 위해 python과 pandas, matplotlib도 공부했다.
(써놓고 보니 꽤나 많이 했네..)
그리고 인터브랜드에서 인턴을 하면서 브랜딩 실무를 익혔다.

(행복한 것 맞습니다... 퇴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인터브랜드에서 인턴할 때 내가 행복해보였다고 말한다.
실무는 강연과 책과 많이 달랐다.
물론 강연이나 책에 있는 내용들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활자나 음성으로 듣는 것보다 실무에 몸을 던지고 읽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자료를 찾고
컨셉에 따라 후보안을 백 개씩 만들고
그 후보안에 대한 브랜드 스토리, 태그라인 등을 구상하고
서베이 및 evaluation 자료를 정리하는 등
책보다 더 생생하고 와닿는 실무가 많았다.
나는 그 현장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적용하고, 좌절하는, 때로는 성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이 좋았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행복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인턴 생활을 전후로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3.
그래서,
나는 단순히 취업을 하는 마음을 넘어서
일을 하고 싶다.
일을 해서 더 성장하고 싶다.
실무가 없이 책과 강연으로 성장하는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공부는 끝이 없고, 개인의 성장에도 끝이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실제 필드의 일을 배워야 한다.
실무를 배우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고 싶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책 <왜 일하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p.18
얼마 전 자소서를 쓰면서 나의 주요한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도전과 성장'이라고 키워드를 잡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런 나의 간절한 마음이 일과 나를 이어주는 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은 지난한 것이겠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배울 점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