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시간 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취업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가급적 부담을 안 주시려는 긴장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수영도 재밌게 하고 있고, 몸도 건강하고,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취업 관련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질문을 하나 하셨다. 어느 쪽(직무)으로 지원하냐고. '영업이나 마케팅이죠'라는 내 대답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잠시 후..
"아들, 근데 마케팅이 뭐야?"
라고 질문하셨다. 그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왜 말문이 막혀버린 것일까.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브랜드, 상품, 서비스의 개발 단계부터, 고객의 손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매 단계를 관리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 대답은 뭔가 어머니를 단박에 이해시킬 수 없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써놓고 읽어보니까 되게 딱딱한 느낌이 든다. 절대 어머니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에게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너무 생소한 단어이기 때문에, 순간 나는 어떻게 하면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케터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내 브랜드에 사람들이 꽤나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 같다. 내가 무인양품의 마케터라고 생각해보자. 나는 무인양품의 상품이나 서비스 종류, 브랜드 철학, 마케팅 전략, 강조 포인트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브랜드, 상품, 서비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것이 마케터의 임무이리라. 하지만, 내가 아는 만큼, 혹은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소비자가 우리 상품,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불러오는 것 같다. 브랜드에 대해, 마케터와 소비자가 각각 지닌 지식의 격차가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원인이다. 어쩌면 궁극의 마케터는 유치원생에게 자기 브랜드를 납득시키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닐까 싶다.
마케팅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많은데, 나만의 정의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빗댈 수 있는 대상을 찾아봐야겠다.
어머니는 질문을 하나 더 하셨는데, 이 또한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러면 마케팅이랑 영업이랑은 어떻게 다른 거야?
"음.. 영업은 직접 파는 거고, 마케팅은 그것보다 더 넓은...(어버버)"
에라이... 이게 면접이었으면 나는 고배를 마셨겠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이게 면접장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사회에 진출하신 1980~90년대 한국에서는 마케팅 개념보다는 영업의 개념이 더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이 곧 영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영업과 마케팅은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업과 마케팅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네이버 국어사전에 쳐봤다.
영업: (경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
마케팅: (경제) 제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이전하기 위한 기획 활동. 시장 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촉진 따위가 있다. ‘시장 거래’, ‘시장 관리’로 순화.
고려대한국어사전에서 '마케팅'을 찾아봤다.
마케팅: (경제)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체계적인 경영 활동. 시장 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등이 이에 속하며, 소비자에게 최대의 만족을 주고 생산자의 생산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장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등이 이에 속하며'라는 구절에 주목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판매, 곧 영업은 마케팅 안에 포함된다. 마케팅이 상품, 서비스의 개발부터 소비자의 손에 도달할 때까지 치러야 하는 수많은 전투라고 본다면, 영업은 브랜드의 맨 앞에서 소비자를 공략하는 선봉대라고 볼 수 있겠다. 오 뭔가 명확해지는 느낌!
마케팅은 상품,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계획적인 활동이다. 좋은 품질의 상품, 서비스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전하여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활동이다. 기업에는 수익이 많아야 하고, 소비자에게는 가성비뿐만 아니라 가심비도 좋아야 한다. 성능이 좋으려면 상품 서비스 개발 때부터 마케터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적정한 가격에, 효율적인 배송 방법으로 고객의 눈 앞에 상품, 서비스를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우리 브랜드가 묻히지 않도록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한다. 이 각각이 결국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인가 보다. 그 선봉에 서서, 시장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우리 브랜드를 침투시키는 선봉대 같은 역할을 영업이 맡는 것 같다.
과연 좋은 설명일지 모르겠다.
일단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이대로 설명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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