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불합격 메일이었다. 예의를 차린 말이지만, 메시지는 서늘했다. 이 메일을 마지막으로 나의 상반기는 끝이 났다. 또 취업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나는 그때 야마모토 후미오의 <결혼하고 싶어>를 읽고 있었다. 책을 내려놓고 벽을 바라보았다. 동기부여의 말들이 가득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보내는 글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힘내. 너의 이야기를 하자.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을 꾸깃꾸깃 접어 쓰레기통에 넣고 창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가서 청소기를 가져와 바닥을 쓸었다. 오랜 기간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빨아냈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은 금방 뽀득뽀득해졌다. 차곡차곡 쌓인 먼지들이 곳곳에 엉겨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브랜딩, 배달의민족 관련된 책들을 다 책장에 꽂았다. 책등이 보이지 않도록 꽂았다. 한동안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난 1년 4개월의 시간을 톺아보았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간 시기였다. 인턴을 하면서 야근도 즐겁게 했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라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뻤다. 찾아온 기회에도 감사했고,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스펙도 올리고, 그동안 했던 활동도 잘 정리했다. 2019년 상반기는 해낼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안고 2019년 1월을 맞이했다. 하나둘씩 올라오는 채용에 도전했고, 배달의민족 신입 모집에도 도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배민 신입은 몇 년만에 열리는 기회라서 정말 귀했다. 하지만 상반기는 초반부터 좋지 않았다. 3월부터 서류는 우후죽순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대 최악의 채용 시즌이라는 취업컨설턴트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배달의민족만 서류에서 합격했다. 서류 합격 결과 메일을 보고, 펑펑 울었다. 그만큼 좋아하는 회사였고, 그 회사가 유일하게 이번 상반기에 나에게 '만나보자'라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면접은 즐거웠다. 내가 가진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 배민의 마케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케팅, 실패한 마케팅의 사례, 내가 좋아하는 것(과제)을 소개하기. 좀 신나보였을 수도 있었을텐데, 절제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답변했다. 내가 면접 자리에서는 을이지만, 나도 엄연히 회사를 면접하러 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솔직한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들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래서 떨어졌나?) 물론 그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 참 행복했다.
1년동안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으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노력을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영을 해냈다. 배민 덕분에 이렇게 성장했고, 고난을 겪으며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기억했다.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왔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신입으로서 뭐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되었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를 할 각오도 되었다.
하지만, 떨어졌다.
점을 봐준 친구도 당황했고, 내 주변 베프들도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들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근시일 내에 시작될 나의 폭주가 두려웠던 것 같다.내가 보낸 개인톡에 그들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의 폭주가 무서웠다. 참기 위해 혼자서 글을 써야 했다.
나는 퍽 억울했던 모양이다. 난생 처음으로 채용팀에 메일을 보냈다.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려주신다면, 보완해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답신이 금방 왔다. 채용의 과정은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어 사유를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결코 민경님의 역량이나 성향이 부족함이 있어서 불합격 통보를 받으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성향이 부족함이 있던 것도 아니라면 나는 대체 왜 떨어진 걸까. 한 번 더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미저리 같아서 이내 그만두었다. 답답하다.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인상 비평인가. 내 외모가 못 생겨서? 팀이랑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일을 못할 것 같아서? 멘탈이 안 좋아보여서? 그냥 이민경이란 사람이 인상이 별로여서? 면접 때 너무 나대서? 친한 선배는 '브랜드에 관한 철학, 생각은 인터브랜드 사람들 못지 않게 많다'고 위로해줬다. 이 이상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나요 선배. 나의 유용성, 쓸모 있음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내 얘기를 했는데도,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최선을 다 했는데도, 모자란 재능을 채우기 위해 노력도 했는데도,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오늘 <최인아 책방>에서 한명수 CCO님(이하 상무님)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제목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미지와 영상을 다루는 사람은 어떻게 사고하는지 그 방법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역시 기대했던 것처럼 상무님의 장표 첫 장은 힙했다.
세바시 강연에서도 뵀지만 역시나 유쾌하신 분이다. 보고 있는 사람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먼저 막 돌파하시는 분 같다. 이런 분들 보면 에너지 고갈이 걱정된다. 사실 나도 그런 편이다.
1. 나는
자기를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 나 스스로 나를 이해하는 방법
-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방법
전자는 오류투성이이므로, 상무님은 후자에 도전하셨다.
상무님의 우형 입사 3개월 후, 봉대표님이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고 한다.
"이사님, 우리 브랜드 안 사랑하시죠?"라고 하셨을 때 상무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네, 안 사랑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과연 내가 상무님 입장이었을 때 저렇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답변하신 상무님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흥미롭게 들으신 봉대표님도 놀랍다.
그리고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봉대표님께 카톡을 하나 보내셨단다. "대표님, 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대표님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기다려달라고 하시고, 얼마 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브랜드 옷을 각각의 상황에 맞춰 가장 잘 입는 센스 충만한 디자이너"라는 답변을 보내셨다고 한다. 이에 감동받으신 상무님은 카카오 이모티콘이 아닌, 라인 이모티콘을 캡처하고 크롭 해서 보냈다고 한다. 진정성을 담은 성의의 표시였으리라.
나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진정성 있고 또 꽤나 잘 맞는 답변을 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나 외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 고민으로 답변을 진심을 다해 만드는 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그렇게 점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계시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일까
나의 2017년이 생각났다. 정말 상무님 표현대로 '나는 ㅈ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해였다. 세상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매정한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하지만 묘한 위로가 찾아왔는데,
아 그러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그 덕분에 1년 간 내 멋대로 살았다. 책도 내고, 평창 올림픽도 다녀오고, 상반기 준비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인턴도 하고, 뭐 진짜 이것저것 많이 했다. 덕분에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알아가야지. 그 과정에서 감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요즘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닌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준 친구에게도 고맙다고 하고, 거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고맙다고 한다. 그 모든 사람들의 조각이 모여서 오늘도 나는 나를 구성하며, 나는 나를 조금 더 알아간다.
2. 손이 생각
상무님은 디자이너이다. 즉,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은 손이 생각한다. 손에 뇌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배민에 왔을 때 상무님은 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했다. 그니까 정말 눈에 보이는 문제는 싹 다 그의 몫이었던 것이다.
배민의 Vision Ver.2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
이 문구를 봉대표님이 만들었을 때, 바로 손이 나가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곳은 약간 사람 뛰는 것처럼 표현해봤다(폴짝)
곳을 사람처럼 해봤어요. 곳! 곳! 곳!!!!! 어때? 사람같져?!!!! 곳!! 곳!!!!
내 생각) 개인적으로 이 슬로건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배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배달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표어다. 글쟁이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글..
어슷한 디자인 - 반찬 패키지
상품의 품질은 그대로인데, Visual적 요소(Package)를 바꾸니 소비자들이 맛을 다르게 느낀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기한 일!
내 생각) 과연 카피, 글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미지의 힘일까? 그렇다면 나도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 문화(文畫 - 글과 그림) 대통합을 이루리라!
양이 질을 압도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을 생산하다 보면 '오 이거 괜찮은데?' 싶은 게 나오는데, 그게 진짜 괜찮은 것이다.
내 생각) 모든 창의노동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얘기 같다. 예전에 애드쿠아 인터랙티브 AE님 강의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좋은 카피는 어떻게 쓰나요 라는 질문에, '그냥 쓰세요. 멈추지 말고 쓰세요.'라는 답을 해주셨다. 즉, 좋은 카피가 3번째에 나올지, 48번째에 나올지, 27,494번째에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도 그런가 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하는 디자이너"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니까 나를 쳐다보는구나
1세대 웹디자이너로 출발 -> 웹 디자인 에이전시 -> 다양한 회사
제약조건을 이겨내는 훈련 -> 매우 중요하다
ex) 모음 i, o를 쓰지 않은 소설
너 이 기능 쓰지 말고 그려봐.
-> '자유롭게 하세요~' 하면 아웃풋은 대개 다 망한다. 제약조건을 걸고 하는 훈련은 고통스럽지만 아웃풋이 있다.
내 생각) 역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험난한 곳에 던져야 성장한다.
남들이 하는 걸 엄청 잘하게 vs. 남들이 안 하는 걸 조금 잘하게
선택의 문제. 상무님은 후자를 선택했다.
뭔가를 다룰 때 쪼잔하고, 쩨쩨하게 다루기
내 생각) 쇼호스트 출신 황현진 강사님께 '말하기'에 대해서 배운 것이 기억났다. 황현진 강사님은 영업의 말하기도 결국 설득이며,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짜잘하고, 쪼잔하고, 찌질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도록. 결국 이 지점이 글과 이미지의 접합점인 것 같다.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면, 최대한 글로 짜질, 쪼잔, 찌질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ex. 숙취해소제
- 이 약은 숙취해소에 직빵입니다.
- 사장님. 요즘 연말인데 회식이 잦으시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술냄새, 고기 냄새난다고 피하고, 사모님은 한숨 푹~ 쉬시고...
근데 이 약 하나만 드시면, 회식 다 끝나고 말끔한 모습으로 치킨 한 마리 사들고 들어가실 수 있어요~ 애들이 우리 사장님을 너무 좋아하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대기업 회의 분위기
- 이상하다.. 괜히 엄숙하다.. (나는 사진 찍지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회의에서 추상적이고 실재가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 다들 말만 하지, 손을 쓰지 않는다.
-> "아!! 시각적 소통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자" -> "펜을 드세요. 칠판에 그려보세요. 제가 팔꿈치를 받쳐드릴게요. 그려보세요."
Q. 왜 시각적 소통을, 사람들은 두려워할까? 어차피 결국은 만들 거잖아. 뭐가 됐든 표현해라!!
상무님의 임무: "시각적 경청자"로서 '시각 소통 가능자'와 '시각 소통 불가자'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
어슷하게 하기 : 만화로 보고서 작성하기 --> 아무도 읽지 않던 보고서를 사람들이 보기 시작. --> 보고서 마지막 장에 절취선으로 이것만 보세요 부분이 너무 인상 깊음
소비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우형은 단순 배달회사가 아니라 IT 인공지능 개발회사구나'라는 것이 생긴다.
3. 진짜 vs 가짜
1) 참에 대한 궁금함
* 겉과 속이 일치해야 진실이다 --시각적 사고는 바깥을 보고 안을 읽어낸다
겉과 속이 일치해야 진실. 그 경계에 디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2) 면접하지 말고, 우리 대화해요.
"진짜 너의 얘기를 해줘!!!"
(당신이 대학생 때로 돌아갔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때 어떻게 말했나요?)
- 다들 어려워한다. 왜 힘들까.
- 그 안에 분명히 진짜 자기가 있는데... 제발 꺼냈으면!
오리지널(Original)
"똑같이 하세요. 근데 새롭게는 보여야 해요."
대학교 교과서가 말하는 브랜드 디자인 : 일관성, 타당성 --> 현실에서는 ㄴㄴ --> 하지만 배민은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창의 노동의 회복 -- 트렌드를 따르는 순간 트렌드의 노예가 된다
디자인 결과물은 정직하다
일관성: 사장님들 메뉴 사진은 무조건 디자인 팀에서 촬영. 빛. 조도. 방향 등을 다 설정
업무보고서
- 사진 + 에세이 구조. 무조건 타 직군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라. 화이트 밸런스란 말 말고 쉽게 쉽게!!
- "행복하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신기)
- 감정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행복하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업무 보고서. 타 직군의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유치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제약 조건을 훈련하자.
우리는 누구와 협업하든, 늘 하던 것을 한다.
의사결정 과정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느껴지도록 공유한다
-- 반드시 경험하도록, 특히 재미있게 경험하도록
-- 재미있는 일은 재미있게 결정한다.
배민의 자원은 외부에서 끌어다 쓴다 - 신춘문예, 치킨 소믈리에
이 아저씨도 배민의 자원. 아니면 배가 고프거나.
일하는 사람의 반응과 대화에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 충만했다 허무했다
이 둘의 반복이 삶이 아닐까.
팀 내부에서 정서적으로 즐거운 느낌을 만드는 것이 나(상무님)의 임무!
"시각적 훈련하기" :컵을 컵으로 보지 않기. 다르게 보기 ex.)ㅋㅋ페스티벌 ㅋ인증샷 이벤트
5. 그래서...
"한 분야의 창조적 사고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세바시 영상으로만 뵀을 때는 그저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는데, 오늘 강연을 듣고 나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솔직한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 걸지 모르겠다.
"저는 글로 자신을 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감정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무겁고, 우울하고 심오한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면접이나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이것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대리님, 점심 먹고 오니까 지금 제 배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해야 할까요.."
상무님은 내가 글을 쓸 것처럼 생겼다(덧붙여, 윤동주를 닮았다고...)라고 하시고, 이내 진지해지셨다.
"일단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해요. 나는 일이고 사람이고 뭐고 돈이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 자신을 숨기세요. 하지만 나는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과 정말 일하고 싶다' 싶으면, 표현은 좀 이상해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세요. 그 자리가 물론 긴장이 되는 자리인데, 다 아저씨들이에요. 저는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계속 스스로에게 얘기했어요. '아저씨야. 아저씨야. 아저씨야.', '이 건물 나오면 내가 '저기요, 아저씨' 할 수 있는 아저씨야', '명함이 없으면 아저씨야. 아저씨야. 아저씨야'를 계속 말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기업에 면접받으러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기업을 면접한다고 생각하고 가세요."
...
질문하기 참 잘했다.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쭉 빠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자꾸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분장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건데, 남들도 좋아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있어보이는 것', 'RGRG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냥 내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답을 생각해야겠다.
집으로 가던 길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 영화 <족구왕>
조직문화를 만들고, 회사 내부의 '창의 노동 집단'의 자원들을 자극해서 최대의 성과를 내게 하고, 슬로건도 쓰고, 붓글씨도 쓰고, 비누도 깎고, 앱도 디자인하고, 직원들이 잘하면 즉석 상장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고, 낙서하도록 유도도 하고, 망한 서비스의 그림을 재활용도 하고, 이제는 하다 하다 로봇 디자인까지 하는 한명수 상무님의 삶은 말 그대로 몸을 쓰는 사람의 삶이었다. 예술가라 하면 뭔가 카페에서 망중한을 보내면서 영감을 얻으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상무님이 말씀하신 디자이너는 그것과 달랐다. 배민의 디자인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창의노동이라는 단어가 뇌에 강하게 박혔다. 내가 하는 글쓰기도 창의노동이 될 수 있기를.
상무님은 디자이너이기에 앞서, 명함, 소속, 종교, 인종, 성별 등을 다 떼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이 나라는 존재를 보장한단 말인가. 영원한 회사도 없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에 대한 고민은 멈춰서는 안 되겠다. '혼자 고민하면 오류투성이'라고 상무님은 말씀하셨다. 결국 필요한 건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나에 대해 고민해주고 표현해주는 좋은 사람들, 좋은 동료들이겠다.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어서, 한명수 상무님은 조금 더 자기 자신이라는 진리에 다가가고 있으신 것 같다. 부럽다.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 ‘신입' 채용 공고 소식을 들은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내 지인들은 아마 질릴 지경일 것이다. ‘또 배민 얘기야?’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공식적으로 채용 공고가 올라온 후,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항이...
(ㅇㅏ… ‘자유롭게’라는 말이 주는 이 막막함이란...)
막막함 앞에서 넋을 놓았지만, 내 머리는 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을 통해서 배달의민족 채용팀과 브랜딩실이, 지원자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뭘까?’
'이 지원자가 얼마나 마케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왔는지?’
…
일단 처음에 저 문항을 봤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당신이 궁금해요'였다.
좀 더 구체화시키면,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요’.
아직 막연하다는 생각에 우아한형제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인재상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는 인재상, 비전 등을 가볍게 여겼다. '뭐야 어차피 스펙 보고 뽑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면접을 보면서 인재상과 비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면접에서 그 회사만 독특하게 묻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그 기저에는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 가치와 지원자를 대조해보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다.
배민의 4대 핵심가치
규율위의 자율
스타보다 팀웍
진지함과 위트
열심만큼 성과
우아한 인재상
근면성실
새시대 새일꾼
근검절약
배려와 협동
<흩어진 조각을 모아보자 - 숭 님과 장 이사님>
배민에서 마케터로 일하시는 승희 님(이하 숭 님)의 인사이트 노트 인스타 계정과 브런치 글을 보면 숭 님의 주요한 고민을 볼 수 있다. 함께 일한다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숭 님의 인사이트 노트 인스타에서 어떤 사람이 ‘배민은 마케터가 되려면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고, 이에 대해 숭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4대 핵심가치 중 <스타보다 팀웍>이 떠오른다.
나는 또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점점 질문이 구체화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추상적인 느낌이다.
배달의민족 장인성 이사님의 <마케터의 일>을 펴본다.
1. 배달의민족을 좋아하는 사람
2. 일을 좋아하는 사람
3.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
4. 깊이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5.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여기서 장 이사님은 맨 마지막 항목인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 강조점을 두셨다. 결국 다 연결되는 것 같다. ‘스타보다 팀웍’,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함께 잘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브랜딩이든 무엇이든 혼자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사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해결책을 만든다. 예를 들어, 콘텐츠의 조회수는 높은데, 댓글이 달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각자 해결책을 만들 것이다. 댓글 이벤트를 해요. 썸네일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요. 참여용 콘텐츠로 개발 방향을 수정합니다. 등등. 그리고 팀에서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과정이 아닐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 관철이 아닌 설득 말이다.
팀에서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과정이 아닐까.
하지만 협업은 확실히 많은 노이즈를 동반한다. 혼자 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만 받지만, 함께 하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사람에게 오는 스트레스’가 추가된다. 나도 솔직히 학교에서 조별 프로젝트보다 개인 프로젝트를 더 선호하곤 했다. 조모임 날짜를 정할 필요도 없고, 내가 기획해서 내가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가 다 지면 됐다. 이런 사실을 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 왜 그들은 협업을 강조하는 것일까?
개인 창업이나 소규모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에야 회사일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브랜드에서 풀 스콥(full scope)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전사가 그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배(ship)를 띄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서가 달려든다. SC팀(Strategy Consulting)은 바다(시장, 소비자)를 분석하고 브랜드가 항해해야할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이다. 내가 있던 VB팀(Verbal Branding)는 브랜드라는 배의 이름과 표어, 슬로건을 지어준다, 바다의 모든 사람들이 그 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BD(Brand Design)팀은 브랜드라는 배에 도색을 하고 인테리어도 하면서 모든 시각적 요소를 채워넣는다. 이로 완전한 배가 하나 완성되어 출항한다. 마지막으로 BA팀(Brand Activation)에서는, 이 배가 바다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다. 어떻게 충성스러운 동료 선원을 모집할 수 있을지, 라이벌 배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공격방법 등을 기획한다.
(엇.. 갑자기 밀짚모자 해적단의 브랜딩을 분석해보고 싶어졌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배를 띄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서가 달려든다.
이 모든 스콥을 한 명이 처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래서 협업은 필요하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팀과 회사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 안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낸다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배달의민족에서 협업을 잘한다는 것은?>
다시 장 이사님의 기준으로 돌아가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덕목(?)"을 나열해봤다.
1 — 브랜드 로열티
2 —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이유가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즐김
3 — 자기 자신이라는 인적 자원을 개발하여 전체의 발전을 유도
4 — 고객에 대한 설득 역량
5 — 다른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이를 다시 문장으로 만들어봤다.
(1,2) 지원하는 회사의 브랜드(배달의민족)를 좋아하며, 일에 대한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브랜드와 관련된 일 일체를 좋아하는 사람.
(3)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나 한계에 부딪힐 텐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과 실행을 하는 사람
(4) 어떤 일에 깊게 몰입하고 다른 사람을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설득력,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지닌 사람.(마케팅은 곧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마케터는 자신이 맡은 브랜드에 몰입하고 몰입의 원인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상대방의 효용으로 전환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
(5)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모든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과 갈등을 해결하고,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지닌 사람.
글을 잠시 멈추고, 고민했다.
배민을 떠나서, 브랜드 마케터는 어떤 사람인지 풀어서 재정의를 내려보았다.
배달의민족의 브랜드 마케터는,
1)
배민의 브랜드, 상품, 서비스에 깊게 몰입하여 그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핵심 고객 설득)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잘하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 역량을 팀에 잘 녹여서 공동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사람. (공동의 시너지)
2)
‘왜 일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구현하려는 사람.
내 브랜드와 타깃을 명백히 이해하고, 브랜드와 타깃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브랜딩을 위해 내 자신을 계발하고, 그 계발된 역량을 팀에서 시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공동의 시너지)
1), 2)를 종합해보면,
일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그 '왜'를 위해 일을 한다.
브랜드와 타깃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그 둘을 연결한다.
내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팀에 도움이 되어 시너지를 일으킨다.
흠...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참고문헌에 그저 주석을 단 수준이다.
그래도 내가 나의 언어로 정리하니까 머리에 와닿는 느낌이다.
나는 과연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한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자기성찰에 매우 좋다.(그만큼 괴롭다)
작년까지는 남들이 다 해서, 나빼고 다들 하니까 취업을 서둘러 하고 싶었다. 2018년 말에 인턴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실무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 - 회사 사람들, 소비자들 등등 - 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런 마음을 펼치기 위해, 나는 필드로 나가고 싶다. 학교 도서관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이제 상반기 취업 시즌이 열렸다.
그래서 마음가짐을 다시 점검할 마음으로,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출처: 알라딘)
이 책은 배달의 민족 CBO(Chief Brand Officer)인 장인성 님께서 쓰신 책이다. 그래서 우아한형제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많이 있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배민에 대한 팬심으로 마치 무협지 소설 읽듯 읽었다. 내가 배짱이 모임에 가서 봤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처럼.
이번에 읽을 때는 다른 마음으로 읽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도움을 주기 위한 마케터 지망생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읽었더니, 새로운 것들이 많이 보였다.
(수많은 포스트잇 인덱스)
1. 마케팅의 본질
누구에게 팔면 좋을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은 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원인을 찾고,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최적의 방법을 만들고,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제대로 실행해서, 기대했던 결과를 얻어내는 것, 이게 마케팅의 기본 (p. 16)
결국 마케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상품/서비스를 구매할만한 '사람'이 누군지, 그들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왜 자꾸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지, 그 '사람'이 우리의 상품/서비스를 구매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계획을 짜고, 실행방법을 찾아서, 실현하는 일이 곧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마케팅을 해야하는 것일까? 이윤창출? 맞다.
하지만 나는 이 질문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마케팅을 혐오하는 사람에게는 '사람들 등쳐먹으려고' 라는 말이 나올 테고, 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영업 전략의 틀을 만들기 위해'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다. 나는 사람들의 욕구를 나/회사가 가진 가치로 해소해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을 알아야 한다. 나도 사람이니, 일단 나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경험자산을 늘릴 것을 강조한다.
경험하는 데 돈을 아끼지 맙시다. 돈 쓴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느끼고 경험을 쌓읍시다. 마케터의 소비는 투자와 같습니다. (p. 30)
경험을 통해 마케터는 성장한다. 또한 경험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도 마케터는 성장한다.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 주어진 틀을 깨고 나와 불편한 지점을 찾는 자세, 관찰하고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실행하고, 배우고 실패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어려 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어떤 사람의 성장 유무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경험을 막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언어습관이 대표적인 예다. '원래'라는 말은 정말 모든 논의를 무력화하는 말이다.
열띤 토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그 생생한 현장을 단 한 순간에 압살할 수 있는 말이다. "그건 원래 그래".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도 이 말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마케터의 기획력
마케터는 일단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의 종착지는 결국사람, 소비자이다. 어떤 사람이 나의 상품 / 서비스를 살지 고민하는 것부터 목표는 시작한다. 처음에는 소비자보다 상품 / 서비스 개발이 더 앞선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유형/무형의 가치를 만드는 것에 전제는 그 가치를 소비할 사람이기에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결국 모든 마케팅 목표의 시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 타겟 소비자를 설정할 떄 우리가 하는 가장 쉬운 실수는 '인구통계학적 기반'으로 소비자를 나누는 것이다. 왜냐.
그게 가장 쉬우니까. 하지만 저자는 이런 구분은 요즘같은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평균'으로 '보통'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달라요. 평균은 낼 수 있지만 보통이란 건 없습니다. ... 우리 모두를 각각 다른 개인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비로소 소비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숫자 뒤에 진짜 사람이 있습니다. (p. 73)
사람을 정했으면, 다음으로 마케터가 던져야할 질문은 '왜(why)?'이다. 왜 이 마케팅 캠페인을 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수단만 적용하면, 비효율과 비용의 낭비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케터라는 직업은 줄타기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줄을 타야 하며, 누구보다 내 상품 / 서비스를 사랑하면서도 가장 호된 시선으로 나의 상품 / 서비스를 바라보아야 하는 달인. 그리고 늘 핵심고객과 그들의 행동을 상상하면서도, 지나치게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히지 않게 상상을 제어하는 달인. 그 중간을 잘 지키는 달인이 된다면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을까.
3. 마케터의 실행력
마케터에게는 작게 시작해서 짧게 던지고 빠르게 해야 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배트를 휘두르는 것 뿐입니다. (p. 131 - 132)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만 해도 실행력이 제로(0)였다. 주요한 원인은 하나였다.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완벽주의, 실패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 등이 실행을 가로 막았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우심과 나 스스로의 뼈를 깎는 노력 덕분에 이제는 실행 속도가 꽤 빨라진 편이다.
실행을 함에 있어서도 '왜'가 중요하다. 조직원이든 조직장이든, 왜를 숙지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전제로 하는 실행은 언젠가 현타를 맞게 되어 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내면에 있으면,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서, 최적의 실행력을 보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일은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함께달리기여야 합니다. (p. 149)
모든 일이 단선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공장에서 기계를 조립하듯이, A공정이 끝나면 B공정을 시작하고, B가 끝나면 C를 시작하는 것처럼. 하지만 마케팅이라는 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직렬적인 일은 없다. 병렬적으로 시간과 자원을 분배해서 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겠다. 상대의 자존심과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상대방을 중심에 놓고 말하는 화법이 필요하겠다. 그게 곧, 좋은 '협업'의 비결이 아닐까.
4. 마케터의 리더십
리더가 구성원보다 뭐든지 많이 알고 항상 옳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면 모두 행복하고 일도 잘 돼요. (p. 186)
최선의 일은, 실행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결정을 그들이 내릴 수 있게 해주고 책임은 제가 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p. 199)
피드백을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일과 자신을 분리해야 합니다. (p. 207)
이 부분을 읽으면서, 리더가 이렇게 판(?)을 깔아주는 회사에서 일한다면,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상호 믿음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느꼈다. 나는 너의 의견을 비판하는 것이지, 널 비판하는 것은 아니야. 무슨 말이든 좋아, 너의 의견을 들려줘. 라는 개방되고 포용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든 것이 배달의민족이 오늘날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닐 것이다. 판을 깔아주고 대화의 장을 열어주고 책임을 지는 리더와, 그 리더 아래에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치는 팀원. 정말 최상의 조합 아닌가.
5. 감상
마케팅에 관한 소소한 에세이 같지만, 마케팅을 넘어서 일을 하고 있는, 일을 할 예정인 사람 모두가 보면 좋을 책이다. 일이 막힐 때 펴봐도 좋은 실용서의 느낌도 난다. 일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에 대한 것이 주요한 내용같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거나, 딴 마음을 먹고 있다면 그 능력은 조직에 독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어떤 구직자인가. 나는 마케팅을 한다고 하면서 과연 사람을 생각하는가. 일을 왜 하려고 하는가.
이 외에도 수많은 질문을 내게 던져준 책이다. 상반기 공채 자소서를 쓰기 전에 읽어서 더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