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월요일, 신나게 수영을 했다. 평소보다 좀 더 신난 것은 새 수영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작은 유니콘이 무지개 빛을 발하면서 날아다니는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늘을 가르는 유니콘처럼 나는 물살을 갈랐다. 귀에 들어오는 물도 짜증 나지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유니콘처럼 고개를 터는데...

 

저 영롱한 유니콘이 보이는가...

뿌득!

(이라는 소리가 난 건 아니고, 느낌이 그랬다.)

 

근육에 입이 달렸다면, 근육은 이렇게 비명을 질렀을 것 같다. “뿌득!”

왼쪽 승모근이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찌릿찌릿거렸고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목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당황했다. 사실 그 순간 목이나 어깨가 심하게 다친 건가!라는 생각보다는, 헐 수영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더 앞섰다. 누가 보면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인 줄..

 

 

#2.

하루정도 나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틀이 지나도 어깨는 뻐근했고, 목을 돌릴 때마다 목, 승모근, 등 근육이 당겼다. 결국 하숙집 할머님이 추천해주신 한의원에 갔다. 의사선생님은 내 증상을 들으시더니, 인자하신 얼굴로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다.

 

“경추와 ~ (뒷 내용은 다 까먹음)”

 

그니까 요약하면 고개를 너무 세게 털어서 뼈가 순간적으로 어긋난 것이다. 담이 걸렸다고 보면 되고, 디스크 초기로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평소에 자세도 안 좋아서 더 무리가 갔을 테니, 침 맞고 물리 치료 받고 거북목 교정 스트레칭도 하고 올바르게 앉을 것을 주문하셨다. 많기도 하여라. 지금 좀 고생해야 나중에 디스크 안 온다는 말씀에 나는 예수를 만난 환자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3.

말 나온김에 추나요법도 받아보기로 했다. 의료보험처리가 되어서 더 저렴해졌고, 척추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에 나는 별 이견없이 그러자고 했고, 침대처럼 생긴 기계 위에 누웠다. 선생님이 버튼을 누르자, 기계는 내 목과 허리를 쭈~~~욱 늘리기 시작했다. 기계는 내 허리를 쭉 늘린 상태에서 상체를 좌우로 움직이게 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생각났다. 지나가던 행인을 붙잡아서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늘려서 죽였던 그리스의 사이코패스... 결국 그는 테세우스한테 똑같은 방법으로 죽었다. 역시 아전인수의 결말은 좋지가 않다. 추나요법을 받으면서 프로크루스테스를 생각하니까 이 침대에 누울 때마다 뭔가 기분이 요상했다.

 

프로크루스테스(오른쪽)의 침대

 

치료가 끝나고 선생님께, “저 수영은 언제쯤...”이라 여쭤보았다. “당분간은 쉬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이토록 슬플 수가... 당분간이라는 추상적인 말 속에 과연 며칠의 기간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그 막연함과 애매모호함이 날 더 힘들게 했다. 기약이 없는 약속이 주는 희망은 오히려 절망적이다. 언제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역도 가능하다.

 

#4.

수영을 일주일 쉬니까, 삶은 보란 듯이 무너졌다. 일단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매일 9시를 넘겨 일어났고, 아침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니 뭔가 허한 마음에 편의점에서 사 먹는 간식이 많아졌다. 빵, 삼각김밥, 우유, 사이다 등 시나브로 주전부리가 늘기 시작했다. 아마 다시 수영장에서 몸무게를 재면 2kg는 쪄있지 않을까.

 

다시 수영을 할 날을 고대한다. 무너진 삶을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수영이 필요하다. 꼭 수영이 아니어도 좋지만, 수영이면 좋겠다.

이 절실함으로 다시 수영을 시작하면 결석하지 말고 매일매일 열심히 해야지.

 

사소한 것을 매일 반복하는 힘이 곧 꾸준함으로 이어지고,

꾸준한 것에서 위대한 것이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잃지 말자.

 

마치,

물에 뜨지도 못하던 내가

접영을 하게 된 것처럼-

2019년 2월 21일 (목)


(출처: Unsplash)



이유는 모르겠는데, 오늘은 무려 5시 반에 일어났다.

알람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다니, 이러다가 11시에 자고 5시에 깨는 생활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수영 시간을 6시로 옮길 수 있을 텐데..


오늘은 처음으로 실리콘 수모와 수경과 롱핀을 쓰는 날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가벼운 발걸음과 두꺼운 미세먼지와 함께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 인트로 쏭 - 수영하러 갈 때 들은 노래


: 마커스 - 주님의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cyOJwFq5pRg


요즘 이유를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 CCM이 떠올라서 계속 듣고 있다.

교회에 안 나간 지도 꽤 됐고, CCM과 담쌓은 지도 오래 됐는데 불현듯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다. 심지어 중간에 찬양인도하는 멘트까지 다 외웠을 정도 ㄷㄷ



오늘의 운동


- 핀 신고 자유형 발차기 50M X 4

- 핀 신고 접영 발차기 50M X 2

- 핀 신고 자유형 50M X 4

- 핀 신고 차렷한 상태에서 접영 발차기 50M X 2

- 핀 신고 한 손 차렷하고 한 손 접영 50M X 2

- 기타 등등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다채로운 연습



오늘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지난주 목요일과는 대조적이다.

지난주 목요일은 운동량이 어마어마했다.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목글을 쓰러 가는 저녁 버스에서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나보다.


추측컨대 오늘 선생님의 강습 방향은 접영 자세 교정인 것 같았다.

수업 말미에 계속 접영 연습을 시켰기 때문이다.

접영은 정말 갑갑한 영법이다. 들이는 시간 대비 나아지는 것이 없고, 안 좋은 자세만 계속 굳어가는 느낌이다.


어제 배송된 롱핀이 좀 큰 것 같다.(큰일..) 왼쪽은 괜찮은데, 오른쪽은 미세하게 발목이 덜그럭 거리는 느낌이 든다.

이걸 중고나라에 또 팔고, 새 롱핀을 주문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핀 고정 밴드를 사기로 했다. 이거는 그냥 내일 백화점 아레나 매장에 가서 살 생각.


수업이 끝나고 구석에 있던 다른 사람의 롱핀을 신어봤다. 

내 핀보다 10mm가 작았는데, 약간 작지만 딱 맞는 느낌으로 신어져서 당황했다. (대체 내 발은...)

내 발이 칼발인 건가 싶었다.

무튼 얼른 밴드를 사서 번거롭지만 매번 끼고 수영을 해야지, 안 그러면 발목 부상이 올 것 같다.


그리고...

수영을 끝나고 나가는데 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서대문구연맹회장배 수영대회!!!


수영대회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혀버렸고, 갑자기 난생 처음 의욕이 생겼다.

입상보다는 그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접수가 시작하는 날을 다이어리에 적어놓았다.

포기하지 말고 꼭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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