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불합격 메일이었다. 예의를 차린 말이지만, 메시지는 서늘했다. 이 메일을 마지막으로 나의 상반기는 끝이 났다. 또 취업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나는 그때 야마모토 후미오의 <결혼하고 싶어>를 읽고 있었다. 책을 내려놓고 벽을 바라보았다. 동기부여의 말들이 가득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보내는 글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힘내. 너의 이야기를 하자.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을 꾸깃꾸깃 접어 쓰레기통에 넣고 창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가서 청소기를 가져와 바닥을 쓸었다. 오랜 기간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빨아냈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은 금방 뽀득뽀득해졌다. 차곡차곡 쌓인 먼지들이 곳곳에 엉겨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브랜딩, 배달의민족 관련된 책들을 다 책장에 꽂았다. 책등이 보이지 않도록 꽂았다. 한동안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난 1년 4개월의 시간을 톺아보았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간 시기였다. 인턴을 하면서 야근도 즐겁게 했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라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뻤다. 찾아온 기회에도 감사했고,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스펙도 올리고, 그동안 했던 활동도 잘 정리했다. 2019년 상반기는 해낼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안고 2019년 1월을 맞이했다. 하나둘씩 올라오는 채용에 도전했고, 배달의민족 신입 모집에도 도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배민 신입은 몇 년만에 열리는 기회라서 정말 귀했다. 하지만 상반기는 초반부터 좋지 않았다. 3월부터 서류는 우후죽순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대 최악의 채용 시즌이라는 취업컨설턴트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배달의민족만 서류에서 합격했다. 서류 합격 결과 메일을 보고, 펑펑 울었다. 그만큼 좋아하는 회사였고, 그 회사가 유일하게 이번 상반기에 나에게 '만나보자'라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면접은 즐거웠다. 내가 가진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 배민의 마케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케팅, 실패한 마케팅의 사례, 내가 좋아하는 것(과제)을 소개하기. 좀 신나보였을 수도 있었을텐데, 절제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답변했다. 내가 면접 자리에서는 을이지만, 나도 엄연히 회사를 면접하러 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솔직한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들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래서 떨어졌나?) 물론 그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 참 행복했다.
1년동안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으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노력을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영을 해냈다. 배민 덕분에 이렇게 성장했고, 고난을 겪으며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기억했다.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왔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신입으로서 뭐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되었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를 할 각오도 되었다.
하지만, 떨어졌다.
점을 봐준 친구도 당황했고, 내 주변 베프들도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들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근시일 내에 시작될 나의 폭주가 두려웠던 것 같다.내가 보낸 개인톡에 그들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의 폭주가 무서웠다. 참기 위해 혼자서 글을 써야 했다.
나는 퍽 억울했던 모양이다. 난생 처음으로 채용팀에 메일을 보냈다.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려주신다면, 보완해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답신이 금방 왔다. 채용의 과정은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어 사유를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결코 민경님의 역량이나 성향이 부족함이 있어서 불합격 통보를 받으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성향이 부족함이 있던 것도 아니라면 나는 대체 왜 떨어진 걸까. 한 번 더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미저리 같아서 이내 그만두었다. 답답하다.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인상 비평인가. 내 외모가 못 생겨서? 팀이랑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일을 못할 것 같아서? 멘탈이 안 좋아보여서? 그냥 이민경이란 사람이 인상이 별로여서? 면접 때 너무 나대서? 친한 선배는 '브랜드에 관한 철학, 생각은 인터브랜드 사람들 못지 않게 많다'고 위로해줬다. 이 이상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나요 선배. 나의 유용성, 쓸모 있음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내 얘기를 했는데도,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최선을 다 했는데도, 모자란 재능을 채우기 위해 노력도 했는데도, 나는 나를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비언어는 간단히 말해, 언어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말'로 대화한다고 했을 때, 말을 제외한 모든 것이 비언어인 것이다. 표정, 손짓, 몸짓, 심지어 특유의 아우라까지 비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음성에 내용을 실어서 보내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비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언어의 비중보다 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표정을 보면, 이 사람이 내 얘기에 집중을 하는지 안 하는지 '느껴진다'. 눈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다거나, 표정이 시큰둥하다거나, 딴 짓을 하고 있다거나 등의 행동에서 '추측할 뿐'이지만, 대개의 경우 집중을 안 하고 있는 것이 맞더라.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얘기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면, 나의 눈도 흔들릴 것이며, 핸드폰을 보고 있을 것이며, 표정도 시큰둥할 것이며, 뭔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 중요한 소재가 남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소재가 아니라는 점을 늘 생각하는 요즘이다. 나의 제일의 화두가 다른 이에게는 굴러가는 낙엽같은 일이라는 것. 특히 그들이 이미 겪은 일이라면 흥미를 끌기에는 더 부족하다. 이를테면, 취업이 있다. 취업문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기억은 남아있지만, 고통의 생생한 느낌은 그 시간이 지나고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을 내가 자꾸 끄집어내서 환기시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앞서 취업한 사람들에게 잘 연락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한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에 대해 굳이 구구절절 늘어놓으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하지만, 내가 요즘 가진 콘텐츠가 너무 부족해 결국 취업 얘기를 하게 된다.) 물어보면 질문에 답하는 정도만 지향한다. 하지만, 근황을 물어봤으면 시큰둥한 표정은 짓지 않았으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불온한 데이터>라는 전시를 다녀왔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불온하다'라는 단어를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군복무 시절, 종종 부사관, 장교들은 병사에게 '불온서적을 반입하지 말라'고 했다.
'불온'의 사전적 의미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의미에서 '불온서적'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전시회는 데이터의 반체제적인 모습을 다룬다는 것일까? 데이터가 정치적 성향이나 사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바야흐로 '데이터'의 시대라고 한다.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고, 이를 분석하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데이터는 이러한 점에서는 '황금알을 넣는 거위'로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데이터의 소유 유무에 따른 권력 관계를 기저에 깔고 기획된 것 같다. 과연 데이터는 우리 모두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이상향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있는 <불온한 데이터> 소개
작품의 가지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짧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너무 전시회가 길면 피로감이 심해짐) 하지만, 각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을 소개해본다.
1. 크러스 쉔, <위상공간 360>
입장하자마자 시끄러운 소음이 들린다. 뭔가가 계속 부딪히면서 나는 마찰음. 이 작품은 크러스 쉔의 <위상공간 360>이다. 로봇 청소공 360개가 테두리로 구별된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360개의 공이 서로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전시회장 입구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공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딱. 딱. 딱. 소리를 내면서. 천장에는 웹캠이 달려 있다. 웹캠은 공들의 움직임을 기록해서 데이터로 저장한다. 로봇공의 운동 데이터는 벽면에 있는 스크린에 경로로 표시된다. 이것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자유롭게 운동하는 로봇 청소공을 통해, 작가는 우주의 위상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2. 레이첼 아라,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자가 평가 예술작품)>
레이첼 아라는 영국의 여성 화가이다. 이 작품은 '앤도서'라는 데이터마이닝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서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이다 . 말그래도, '레이첼 아라'와, 이 작품의 값어치를 알고리즘을 통해 계산하여 숫자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설치된 웹카메라가 집계하는 관람객의 수, 소셜 미디어, 작품 거래 사이트 등에 작가와 작가의 작품이 언급된 횟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을 두고 전광판에 올라오는 숫자는 계속 변화한다.
<나의 값어치는 얼마>
작품 외로 더욱 놀라웠던 것은, 레이첼 아라라는 작가는 본업이 화가임에도 무려 23년째 알고리즘을 공부해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국 예술계에 만연한 여성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다. 조금 해보고 그냥 관두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본업도 아닌 일을 23년째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화가. 알고리즘을 예술에 활용할 수 있는 예술가라니. 정말 존경스러웠다. 역시 세상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개척해야 한다.
3. 자크 블라스, <얼굴 무기화 세트>
이 작품은 가장 현실고발적인 작품이었다. 애플의 Face ID로 대표되는 안면인식 기술은 현재 중국이 최강이라고 한다. 몇만 명이 운집한 콘서트장에서 안면인식 기술로 지명수배자를 체포한 것은 유명한 뉴스이다. 문제는 이 기술의 악용점이다. 성적 소수자나 소수 민족 등의 얼굴 데이터를 대량으로 축적해, 소수자를 차별하는 기술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는 가능하다고 한다. 얼굴에서 눈, 코, 입 부분만 보고도 알고리즘은 해당 얼굴을 가진 사람의 성적 취향 등을 수 초 내로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크 블라스는, 안면인식 기술이 통하지 않는 가면을 만들었다. 워크샵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를 기반으로 '집단 가면'을 만들었다. 이 가면을 쓰고 시위에 나가면 최소한 얼굴을 통해 개인이 분석될 여지는 없어지는 것이다. '집단 가면'은 성적지향, 인종차별, 페미니즘, 미국의 멕시코 국경 보안 등의 사회적 이슈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얼굴 무기화 세트>
참고)
분홍색 - 성적소수자를 위한 가면
청색 - 프랑스의 베일 착용자를 위한 가면
검정색 - 흑인을 위한 가면
회색 - 국경 보안 거부(멕시코인)를 위한 가면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데이터 그 자체는 숫자의 단순한 조합이다. 가치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가공해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기술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삶을 이롭게 바꿀 수도 있는 반면, 언제든 불평등을 통해 소수자를 억압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만든 데이터는 서버에 저장되고 있겠지.
미래의 예술가들의 도구는 컴퓨터 언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레이첼 아라가 알고리즘을 연구해서,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북저널리즘에서 최근 나온 <특이점의 예술>은 그러한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는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 전시회를 보고 <특이점의 예술>도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
'전시회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말을 얼마 전 들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비유여서 신기했다.
요즘의 나는 너무 과하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서 감정이 과한 느낌이다. 어제는 참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화를 냈다. 그 화가 향하는 곳은 어디였을까. 나에게 압박면접 환경을 만든 선배였나. 그런 나의 얘기를 듣고 웃음을 멈추지 않은 선생님인가.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인가. 그래서 어제 계속 수영장을 돌았다. 돌고 돌고 계속 돌았다. 일요일에는 수영장을 열지 않는다. 오늘도 개장을 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수영을 하러 갔을 것이다.
무튼, 오늘 강연은 @jongseo.one이라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쓰는 이민경으로 참여했다.
Maxim T.O.P Salon
맥심플랜트는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라서, 강연과 별개로 더 기대가 됐다. 과연 이름답게 으리으리한 공장의 모습이었다. 원두를 볶는 기계는 거대했고, 공간이 잘 브랜딩된 느낌이었다. 나중에 다시 가서 찬찬히 둘러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간의 문법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공간에 가서, 분명히 나도 뭔가를 느꼈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좋다', '멋지다', '우와'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게 좀 아쉽다고나 할까. 그림을 배우면 좀 나아질까.
본래 강연의 제목은 <마케터 이승희와 함께 하는 일상과 영감의 기록>이었는데, 그냥 내 마음대로 '마케터 이승희와 함께 하는'이라는 어구를 뺐다. 예전에 숭님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그리고 이 강연에서도 말씀하셨다)
"'저는 마케터입니다'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직업이 마케터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나도 이 말에 적극 공감하기 때문에, 마케터라는 단어도 빼고, 브랜드 네임 같은 '숭'을 글 제목에 썼다.
나는 글을 쓴다고 하지만, 일상의 메모는 잘하지 못한다. 뭔가를 손에 들고 다니는 걸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행여나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메모를 하겠다고 사놓은 노트만 해도 몇 권인지, 그리고 그 와중에 잃어버린 노트도 몇 권인지 모르겠다.
맥심에서 준비해주신 각종 필기도구들(감동..)
1. 치과 생활
숭님은 치과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셨다. '치기공과 출신 마케터'라는 그의 이야기는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블로그, 기록의 시작이어려운 치과 용어를 정리하기 위함인 것은 처음 알았다. 블로그를 블로그라고 부르면 블로그를 하기 싫어지는 것 같다. 뭔가 '블로그'는 전문적이고, 멋지고, 힙하고 끈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근데 숭님은 '나만의 창고'라고 표현했다. 왠지 열심히 관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가? 이런 작은 차이가 블로그를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비슷한 예로, 세바시의 '팬 후원 강연'이 있다. 원래 '유료 강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신병철 박사님이 '팬 후원 강연'으로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단다. 돈을 내는 그 순간에 우리의 뇌에서는 '고통'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는데, 그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마케팅이다. '유료'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팬 후원'이라는 단어로 대체한 것이다. 돈을 내지만 기분도 좋고 좋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도 느껴지는 단어이다. 이런 것이 언어의 힘인 것 같다.
숭님은 아카이브를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재정의했다. 치과 용어나 치과 마케팅에 관련된 글, 배민의 팬(입사 전)으로서 재밌어서 올린 배민 콘텐츠 등이 결국 자신을 보여주는 단서였던 것이다. 내 블로그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 하나는 확실하다. 수영! 만나는 사람마다 "수영은 잘하고 있어?"를 묻는 걸 보니,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서가 수영이 된 것 같다. 좋다. 무튼 숭님은 그 단서들 덕분에 배민에 입사할 수 있었다. 배민 포스팅을 눈여겨보던 장 이사님(장인성 우아한형제들 CBO)께 발탁이 된 것!
아카이브는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단서"
2. Burn Out
배민에서의 삶은 재밌었지만 정말 자신을 '불살라' 일을 하셨단다. 그러던 중 몸에 큰 무리가 와버렸고, 일을 잠시 쉬면서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셨다고 한다. '한 번뿐인 인생, 나의 history를 남기자'는 생각에 본격적인 기록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브런치. 무려 포 트랙을 시작.
인간에게 망각은 축복이라지만, 우리의 삶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 마음가짐, 중요한 기념일, 행복했던 순간, 교훈을 얻었던 뼈아픈 순간 등. 그 망각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곧 '기록'이다. 꼭 기록은 각을 잡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숭님은 주말 아침, 이동할 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틈틈이 기록하신다고 한다. 기록의 목적이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숭님의 동료인 규림님은 사진 대신에 그림으로 기록하시고, 멋지고 착한 종서님(@jongseo.one)은 '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남겨두기 위해, 필름'으로 기록하신다고 한다.
멋지고 착한 종서님(@jongseo.one)
세상의 많은 순간은 우연이다. 내가 방금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길고양이라든가, 카페에 함께 앉아 있는 다른 손님들이나 모두 우연이 만든 일상이다. 어쩌면 기록은 그것을 차곡차곡 수집해서 정리하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기록에서 빈 틈을 찾아냈을 때 예술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한 번뿐인 인생, 나의 history를 남기자'
3. 일상을 예술화하는 방법 3가지
일상을 예술화하는 방법
1) 관찰
사소한 것에 감동을 잘 받는가.
영감 - 내 마음에 자극을 주는 것 - 은 사소한 것에 있다.
2) 기록
좋은 기록 : 현상을 보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왜 느꼈는지를 기록
나쁜 기록 : 현상에 대해서만 하는 기록
3) 실행
마케팅에 적용할 수 있는가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즉, 관찰하고 영감을 얻고 기록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
모든 것으로부터,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다.
From Everywhere, Everything
우리의 뇌는 사실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특히나 어떤 것에 몰입하면 멀티플레이는 더 어렵다. 즉, 자신의 관심사나 자신만의 topic에 따라서 영감을 얻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친구 태영과 글쟁이 이민경이 알파고를 관찰했다고 치자. 태영은 알파고의 알고리즘이나 작동방식, 그리고 저 안에 숨겨진 원리, 자신의 연구에의 적용점을 찾아내는 반면, 나는 알파고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팔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느끼는 두려움을 어떻게 덜어낼 카피를 만들어낼지, 인공지능이 삶에 주는 가치를 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도출하는 인사이트는 다를 것이다. 요즘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그래서 숭님은 여행을 할 때 '테마와 감각이 연결되는 여행'을 하라고 추천하셨다.
쉬고 싶으면 휴양지를 가고, 창업을 하고 싶으면 창업과 관련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여행지를 가라고 하셨다. 그 테마가 무엇이어도 좋다. 단, 자기만의 테마가 있어야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숭님(열정 - a.k.a. 열렬히 애정하는 마음 - 을 가지고 기록하는 사람)의 기록]
- 자리B움 - 인사이트를 얻고 싶은 분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 주간음식 - 음식, 장소에서 얻는 영감의 말을 수집
- 목요일의글쓰기 - 짧은 표현을 더 넓게 확장하기 위해 시작 -> PUBLY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로 연결
- 오래된 물건을 모아서 되팔기 - 각 물건에 깃든 스토리가 매력적
이러한 기록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창의력으로 넘치는 것 같다. TBWA의 박웅현 님은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은 스퀴즈 아웃(squeeze out)이 아니라, 스필 오버(spill over)가 되어야 한다."
즉,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넘쳐흘러야 하는 것.
인터브랜드에서 이름을 만들 때도 그랬다. 뭔가 크리에이티브한 일도 원료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언어의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자연어'를 많이 찾았다. 지천에 널린 게 단어였다. 영어사전, 프랑스어 사전 등을 뒤적거리면서 상품, 서비스 컨셉에 맞는 단어를 찾았고, 신화, 동화, 영화, 만화 등에서도 찾았다. 그리고 변형을 시작했다. 양이 질을 담보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최고의 카피가 10번째 시도에 나올지, 26번째 시도에 나올지, 83,480번째 시도에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신도 모른다. 그러니까 계속 원료를 넣고 달릴 뿐이다.
4. 기록의 이점
객관화
성실
효율적인 시간 관리
생각하며 살기
실행력
글을 쓰면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 내가 언젠가 개설할 글쓰기 수업 <펜시브 글쓰기>가 딱 저 목적이다. 덤블도어 교수가 기억을 보면서 객관화를 하듯이, 우리는 글을 통해 객관화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난잡한 세상에서는 그게 정말 필요하다고 본다.
기록이 습관화되면 성실해진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매번 어떤 것을 메모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checklist를 작성하면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가능하다. 이는 실행력으로도 연결이 된다. 즉, 매일, 매주, 매월 할 일을 기록하면 여기에 'done'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효율적으로 살게 된다는 의미.
이 셋을 전부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생각하며 살기' 같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남은 단 하나의 진리는, 우리는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 그것을 붙잡아두기 위해 우리는 기록한다. 기록을 위해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을 하기 위해 기록할 수도 있다. 뭐든 좋다. 둘 다 해도 좋다.
숭님의 기록도구들
그리고 숭님의 기록 도구들.
+ 기록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록을 담는 그릇도 중요하다.
+ 나에게 맞는 기록의 때, 기록 방법을 찾아보자.
영양결핍에는 임팩타민, 영감결핍에는 숭팩타민
어쩌면 나도 메모의 엄숙주의(?)에 걸린 것이 아닐까 싶다. 메모는 멋진 사람만 하는 것, 글씨가 예쁜 사람만 하는 것, 마스킹 테이프를 잘 쓰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 순간 기록했던 습관이 숭님을 어디로 이끌고 갔는지 잘 볼 수 있었다. 배달의민족, 퍼블리 프로젝트, 독립출판, 그리고 수많은 마케팅 프로젝트와 오늘의 강연까지. 메모의 확장은 숭님의 세계를 만들었다. 나의 글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을까.
나의 글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을까.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나를 객관화해서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글을 쓴다. 브랜드 네이밍이든, 글이든 뭔가 만들기 위해서는 원재료가 필요하다. 메모, 기록은 어쩌면 모든 탄생의 원재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신도 인간을 만들 때 흙을 쓰셨다. 서툴지만 기록을 시작했다. 뭐든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 적고, 가공하고, 시간을 내서 글로 옮긴다. 내 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그 최후의 세계를 기대하면서 오늘도 쓴다. 아 물론, 수영도 한다.
모의면접을 봤다. 다들 대기업, 은행권, 금융권을 보는 와중에 나만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 면접은 대기업, 공기업과 많이 다를 것 같았다. 그래서 좀 어긋난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를 낯설고, 두려운 환경에 던지자는 생각을 갖고 모의면접을 보러 갔다. 내가 왜 브랜드 마케팅, 혹은 마케팅을 하고 싶은지, 내가 겪었던 가장 힘든 일, 기억에 남는 마케팅, 가장 만나기 싫은 상사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내 생각을 얘기했다.
역시 가장 떨리는 순간은 '1분 자기소개'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가장 떨리고 두려운 것같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그것을 잘 소화하느냐의 유무가 아닐까. 이 떨림과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자세를 올바르게 잡기는 쉽지 않다. 만화책 <중쇄를 찍자>의 출판사 사장님은 면접을 본 쿠로사와를 보고 "체축이 곧다" 라고 생각한다. 체축. 즉, 몸의 축. 서있는 자세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출판사 사람들이 쿠로사와를 보고 '꼬마 곰'이라고 느낀 건 곧은 체축때문이 아니었을까. 야구선수, 마작사, 바둑기사 등 남다른 기운을 뿜고 성과를 내는 사람은 체축이 곧다고 한다. 현대인은 점점 체축이 휘어서 큰일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지금 방금 자세를 고쳐잡았다.
최대한 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왜 마케팅을 하고 싶은지, 마케팅은 무엇인지,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인간 이민경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식을 '이야기'처럼 말하고 싶다. Siri나 빅스비처럼 "네. 저.도. 마.케.팅.을.좋.아.해.요" 같은 무미건조한 텔링말고..
중언부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설렘과 떨림, 그간의 삶의 여정을 흥미롭게 전하고 싶다.
마치 유럽여행을 신나게 다녀온 여행자처럼
"제가 스페인 순례길을 갔을 때 일입니다. 그때 제 손에는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최인아 책방>에서 한명수 CCO님(이하 상무님)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제목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미지와 영상을 다루는 사람은 어떻게 사고하는지 그 방법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역시 기대했던 것처럼 상무님의 장표 첫 장은 힙했다.
세바시 강연에서도 뵀지만 역시나 유쾌하신 분이다. 보고 있는 사람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먼저 막 돌파하시는 분 같다. 이런 분들 보면 에너지 고갈이 걱정된다. 사실 나도 그런 편이다.
1. 나는
자기를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 나 스스로 나를 이해하는 방법
-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방법
전자는 오류투성이이므로, 상무님은 후자에 도전하셨다.
상무님의 우형 입사 3개월 후, 봉대표님이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고 한다.
"이사님, 우리 브랜드 안 사랑하시죠?"라고 하셨을 때 상무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네, 안 사랑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과연 내가 상무님 입장이었을 때 저렇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답변하신 상무님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흥미롭게 들으신 봉대표님도 놀랍다.
그리고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봉대표님께 카톡을 하나 보내셨단다. "대표님, 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대표님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기다려달라고 하시고, 얼마 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브랜드 옷을 각각의 상황에 맞춰 가장 잘 입는 센스 충만한 디자이너"라는 답변을 보내셨다고 한다. 이에 감동받으신 상무님은 카카오 이모티콘이 아닌, 라인 이모티콘을 캡처하고 크롭 해서 보냈다고 한다. 진정성을 담은 성의의 표시였으리라.
나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진정성 있고 또 꽤나 잘 맞는 답변을 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나 외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 고민으로 답변을 진심을 다해 만드는 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그렇게 점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계시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일까
나의 2017년이 생각났다. 정말 상무님 표현대로 '나는 ㅈ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해였다. 세상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매정한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하지만 묘한 위로가 찾아왔는데,
아 그러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그 덕분에 1년 간 내 멋대로 살았다. 책도 내고, 평창 올림픽도 다녀오고, 상반기 준비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인턴도 하고, 뭐 진짜 이것저것 많이 했다. 덕분에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알아가야지. 그 과정에서 감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요즘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닌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준 친구에게도 고맙다고 하고, 거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고맙다고 한다. 그 모든 사람들의 조각이 모여서 오늘도 나는 나를 구성하며, 나는 나를 조금 더 알아간다.
2. 손이 생각
상무님은 디자이너이다. 즉,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은 손이 생각한다. 손에 뇌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배민에 왔을 때 상무님은 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했다. 그니까 정말 눈에 보이는 문제는 싹 다 그의 몫이었던 것이다.
배민의 Vision Ver.2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
이 문구를 봉대표님이 만들었을 때, 바로 손이 나가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곳은 약간 사람 뛰는 것처럼 표현해봤다(폴짝)
곳을 사람처럼 해봤어요. 곳! 곳! 곳!!!!! 어때? 사람같져?!!!! 곳!! 곳!!!!
내 생각) 개인적으로 이 슬로건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배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배달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표어다. 글쟁이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글..
어슷한 디자인 - 반찬 패키지
상품의 품질은 그대로인데, Visual적 요소(Package)를 바꾸니 소비자들이 맛을 다르게 느낀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기한 일!
내 생각) 과연 카피, 글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미지의 힘일까? 그렇다면 나도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 문화(文畫 - 글과 그림) 대통합을 이루리라!
양이 질을 압도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을 생산하다 보면 '오 이거 괜찮은데?' 싶은 게 나오는데, 그게 진짜 괜찮은 것이다.
내 생각) 모든 창의노동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얘기 같다. 예전에 애드쿠아 인터랙티브 AE님 강의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좋은 카피는 어떻게 쓰나요 라는 질문에, '그냥 쓰세요. 멈추지 말고 쓰세요.'라는 답을 해주셨다. 즉, 좋은 카피가 3번째에 나올지, 48번째에 나올지, 27,494번째에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도 그런가 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하는 디자이너"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니까 나를 쳐다보는구나
1세대 웹디자이너로 출발 -> 웹 디자인 에이전시 -> 다양한 회사
제약조건을 이겨내는 훈련 -> 매우 중요하다
ex) 모음 i, o를 쓰지 않은 소설
너 이 기능 쓰지 말고 그려봐.
-> '자유롭게 하세요~' 하면 아웃풋은 대개 다 망한다. 제약조건을 걸고 하는 훈련은 고통스럽지만 아웃풋이 있다.
내 생각) 역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험난한 곳에 던져야 성장한다.
남들이 하는 걸 엄청 잘하게 vs. 남들이 안 하는 걸 조금 잘하게
선택의 문제. 상무님은 후자를 선택했다.
뭔가를 다룰 때 쪼잔하고, 쩨쩨하게 다루기
내 생각) 쇼호스트 출신 황현진 강사님께 '말하기'에 대해서 배운 것이 기억났다. 황현진 강사님은 영업의 말하기도 결국 설득이며,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짜잘하고, 쪼잔하고, 찌질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도록. 결국 이 지점이 글과 이미지의 접합점인 것 같다.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면, 최대한 글로 짜질, 쪼잔, 찌질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ex. 숙취해소제
- 이 약은 숙취해소에 직빵입니다.
- 사장님. 요즘 연말인데 회식이 잦으시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술냄새, 고기 냄새난다고 피하고, 사모님은 한숨 푹~ 쉬시고...
근데 이 약 하나만 드시면, 회식 다 끝나고 말끔한 모습으로 치킨 한 마리 사들고 들어가실 수 있어요~ 애들이 우리 사장님을 너무 좋아하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대기업 회의 분위기
- 이상하다.. 괜히 엄숙하다.. (나는 사진 찍지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회의에서 추상적이고 실재가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 다들 말만 하지, 손을 쓰지 않는다.
-> "아!! 시각적 소통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자" -> "펜을 드세요. 칠판에 그려보세요. 제가 팔꿈치를 받쳐드릴게요. 그려보세요."
Q. 왜 시각적 소통을, 사람들은 두려워할까? 어차피 결국은 만들 거잖아. 뭐가 됐든 표현해라!!
상무님의 임무: "시각적 경청자"로서 '시각 소통 가능자'와 '시각 소통 불가자'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
어슷하게 하기 : 만화로 보고서 작성하기 --> 아무도 읽지 않던 보고서를 사람들이 보기 시작. --> 보고서 마지막 장에 절취선으로 이것만 보세요 부분이 너무 인상 깊음
소비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우형은 단순 배달회사가 아니라 IT 인공지능 개발회사구나'라는 것이 생긴다.
3. 진짜 vs 가짜
1) 참에 대한 궁금함
* 겉과 속이 일치해야 진실이다 --시각적 사고는 바깥을 보고 안을 읽어낸다
겉과 속이 일치해야 진실. 그 경계에 디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2) 면접하지 말고, 우리 대화해요.
"진짜 너의 얘기를 해줘!!!"
(당신이 대학생 때로 돌아갔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때 어떻게 말했나요?)
- 다들 어려워한다. 왜 힘들까.
- 그 안에 분명히 진짜 자기가 있는데... 제발 꺼냈으면!
오리지널(Original)
"똑같이 하세요. 근데 새롭게는 보여야 해요."
대학교 교과서가 말하는 브랜드 디자인 : 일관성, 타당성 --> 현실에서는 ㄴㄴ --> 하지만 배민은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창의 노동의 회복 -- 트렌드를 따르는 순간 트렌드의 노예가 된다
디자인 결과물은 정직하다
일관성: 사장님들 메뉴 사진은 무조건 디자인 팀에서 촬영. 빛. 조도. 방향 등을 다 설정
업무보고서
- 사진 + 에세이 구조. 무조건 타 직군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라. 화이트 밸런스란 말 말고 쉽게 쉽게!!
- "행복하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신기)
- 감정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행복하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업무 보고서. 타 직군의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유치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제약 조건을 훈련하자.
우리는 누구와 협업하든, 늘 하던 것을 한다.
의사결정 과정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느껴지도록 공유한다
-- 반드시 경험하도록, 특히 재미있게 경험하도록
-- 재미있는 일은 재미있게 결정한다.
배민의 자원은 외부에서 끌어다 쓴다 - 신춘문예, 치킨 소믈리에
이 아저씨도 배민의 자원. 아니면 배가 고프거나.
일하는 사람의 반응과 대화에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 충만했다 허무했다
이 둘의 반복이 삶이 아닐까.
팀 내부에서 정서적으로 즐거운 느낌을 만드는 것이 나(상무님)의 임무!
"시각적 훈련하기" :컵을 컵으로 보지 않기. 다르게 보기 ex.)ㅋㅋ페스티벌 ㅋ인증샷 이벤트
5. 그래서...
"한 분야의 창조적 사고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세바시 영상으로만 뵀을 때는 그저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는데, 오늘 강연을 듣고 나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솔직한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 걸지 모르겠다.
"저는 글로 자신을 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감정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무겁고, 우울하고 심오한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면접이나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이것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대리님, 점심 먹고 오니까 지금 제 배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해야 할까요.."
상무님은 내가 글을 쓸 것처럼 생겼다(덧붙여, 윤동주를 닮았다고...)라고 하시고, 이내 진지해지셨다.
"일단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해요. 나는 일이고 사람이고 뭐고 돈이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 자신을 숨기세요. 하지만 나는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과 정말 일하고 싶다' 싶으면, 표현은 좀 이상해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세요. 그 자리가 물론 긴장이 되는 자리인데, 다 아저씨들이에요. 저는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계속 스스로에게 얘기했어요. '아저씨야. 아저씨야. 아저씨야.', '이 건물 나오면 내가 '저기요, 아저씨' 할 수 있는 아저씨야', '명함이 없으면 아저씨야. 아저씨야. 아저씨야'를 계속 말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기업에 면접받으러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기업을 면접한다고 생각하고 가세요."
...
질문하기 참 잘했다.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쭉 빠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자꾸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분장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건데, 남들도 좋아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있어보이는 것', 'RGRG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냥 내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답을 생각해야겠다.
집으로 가던 길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 영화 <족구왕>
조직문화를 만들고, 회사 내부의 '창의 노동 집단'의 자원들을 자극해서 최대의 성과를 내게 하고, 슬로건도 쓰고, 붓글씨도 쓰고, 비누도 깎고, 앱도 디자인하고, 직원들이 잘하면 즉석 상장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고, 낙서하도록 유도도 하고, 망한 서비스의 그림을 재활용도 하고, 이제는 하다 하다 로봇 디자인까지 하는 한명수 상무님의 삶은 말 그대로 몸을 쓰는 사람의 삶이었다. 예술가라 하면 뭔가 카페에서 망중한을 보내면서 영감을 얻으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상무님이 말씀하신 디자이너는 그것과 달랐다. 배민의 디자인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창의노동이라는 단어가 뇌에 강하게 박혔다. 내가 하는 글쓰기도 창의노동이 될 수 있기를.
상무님은 디자이너이기에 앞서, 명함, 소속, 종교, 인종, 성별 등을 다 떼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이 나라는 존재를 보장한단 말인가. 영원한 회사도 없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에 대한 고민은 멈춰서는 안 되겠다. '혼자 고민하면 오류투성이'라고 상무님은 말씀하셨다. 결국 필요한 건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나에 대해 고민해주고 표현해주는 좋은 사람들, 좋은 동료들이겠다.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어서, 한명수 상무님은 조금 더 자기 자신이라는 진리에 다가가고 있으신 것 같다. 부럽다.